진심을 담은 진
인터뷰
INTERVIEW #01
슬기로운
조각 탐구 생할
사진 조각의 창시자,
권오상 작가가 말하는 조각의 기쁨과 슬픔.
조각가 권오상
Q. 선반에 재미있는 물건이 많네요. 어릴 때 권오상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A. <소년중앙>을 즐겨 봤어요. 잡지 뒤쪽에 부록으로 입체 종이 공작이 붙어 있었거든요. 초등학교 때는 조립에 빠져 살았는데 조립만 하고 정작 결과물을 가지고 놀진 않았어요. 문방구에서 500원에 파는 <건담 대백과> 같은 불법 출판물도 열심히 모았죠. 막상 만화는 보지도 않으면서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건담이 무슨 내용인지 몰라요. 로봇의 변천사는 다 기억하지만요.
Q. 작업실에 계신 모습이 편안해보여요. 오래전부터 유니클로 옷을 입고 작업했다고요.
A. 맞아요. 어쩌면 유니클로가 내게 가장 잘 맞는 브랜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특히 진을 즐겨 입는데, 사이즈가 다양해 따로 수선할 필요가 없다는 게 좋아요.(웃음) 10여 년 전 런던에 유니클로 매장이 생겼는데 그때가 기억나네요. 당시 아내가 런던에서 공부해 자주 왔다 갔다 했거든요. 중심가인 피카딜리를 지나는데 힙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기에 가봤더니 유니클로 매장이 막 문을 열었더라고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유니클로는 굉장히 친숙한 브랜드 였던 터라 그 모습을 흥미롭게 구경했던 기억이 나요.
Q. 조각 위에 사진을 오려 붙이는 ‘사진 조각’ 작업을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어요. 사진 조각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A. 제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가 밀레니엄 직전이었어요. 당시 교내에 새롭고 아방가르드한 조각을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저 역시 새로운 형식을 만드는 일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대리석이나 브론즈(청동)로 만든 조각 작품을 어려서부터 굉장히 좋아했지만 그처럼 무거운 조각을 직접 만들기에는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Q. 처음 사진 조각을 선보였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A. 1999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린 그룹전으로 데뷔를 했는데요. 당시 루프가 굉장히 주목받던 공간이어서 관객이 엄청 많이 왔어요. 관계자들 반응도 좋았죠. 전시를 본 기획자들이 궁금하다며 제 작업실로 쳐들어오기 까지 했으니까요.(웃음)
Q. 데뷔 때부터 ‘설치미술가’가 아닌 ‘조각가’라는 호칭을 고집하고 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제 작품이 사진 장르에만 머문다면 앞으로 갈 길이 굉장히 좁을 거라 생각 했어요. 스스로 조각가다운 태도를 강조할 필요성을 느꼈죠. 제가 어려서부터 <월간미술> 같은 잡지를 즐겨 봐서 이를테면 누가 유명한 큐레이터고 유명한 기획자인지,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있었거든요. 업계의 동향이라 든가 작가가 되기 위한 톤 앤 매너 같은 게 기본적으로 몸에 배어 있던 터라,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자연스럽게 알아챈 것 같아요.
Q. 조각가라고 하면 망치를 든 석공을 떠올리는 사람이 여전히 많아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장인들이요.
A. 저는 장인 타입은 아닌 듯해요. 하지만 장인의 손끝에서 나오는 완벽함은 좋아해요. 그래서 장인 같은 스태프들과 일하고 있죠.(웃음) 저는 항상 조각을 제날짜에 제대로 완성하는 걸 목표로 삼아요. 예전에 쓰던 작업실 건물 1층이 금형 공장이었는데 공장 한편에 ‘납기일이 우리의 생명이다’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거든요. 그 말이 참 좋았어요.
Q. 사진 조각의 작업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A. 실물 촬영이 가능한 경우 대상을 다각도로 촬영하고, 유명인이나 동물처럼 실물 촬영이 어려울 때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이미지를 써요. 그러다 보면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서 촬영된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한 조각 위에 올려 지죠. 조각 하나에 한 사람의 생애가 들어가기도 하고, 전 세계에 퍼져 있던 특정 동물 이미지가 한데 합쳐지기도 하고요. 공중에 흩어져 있던 이미지들이 랜선을 따라 하나로 모이는 거예요.
Q. 사진 조각 표면이 깨진 화면처럼 왜곡돼 보이는데, 의도적인 건가요?
A. 맞아요. 실물과 결과물 사이에 오차가 있어야 예술성이 좀 더 발현될 것 같아서요. 평면을 입체로 만들려면 모자이크 형식으로 잘라 붙이거나 옷을 재단하듯 칼집을 내서 접어야 하는데, 사진을 입체로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화면이 나온 것도 있고요.
Q. 람보르기니, 부가티, 페라리 등의 슈퍼카를 실물 크기로 구현한 ‘더 스컬프쳐’ 시리즈에는 예외적으로 전통 조각 재료인 브론즈를 사용했어요.
A. 당시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앞둔 상태였는데, 많은 사람에게 주목을 받을 게 분명한 전시여서 이 기회를 잘 살려보자 싶었어요. 현대적인 사물을 만들되 전통적인 재료를 이용해 이참에 내가 조각가임을 스스로 확인해보기로 마음먹었죠. 브론즈로 자동차를 만들고 표면에 로댕의 조각처럼 울퉁불퉁한 붓 터치를 더해서요. 작업실 벽에 ‘대가의 터치를 흉내 내자’는 식의 캐치프레이즈를 걸어뒀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Q. 전통적인 조각 재료를 사용해본 소감은요?
A. 돌이켜보면 내심 어떤 로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사진 조각을 만들 때도 대리석 표면을 찍은 사진을 종종 사용했거든요. 막상 브론즈로 작업하다 보니 전에 없던 존경심이 생기더라고요. 몇천 년 동안 이어져온 재료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싶고. 슈퍼카 조각이 처음 나왔을 때 브론즈 공장 사장님이 “권 작가, 이 작품은 이제 천년만년 가는 거야” 하시는데 순간 마음이 경건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오래가는 대리석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요새는 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는 대리석도 기계로 깎거든요.
Q. 김혜자, 지드래곤, 데이비드 호크니 등 당대의 인물들을 사진 조각으로 만들기도 했어요.
A. 유명인의 사진 조각은 대부분 패션 잡지에서 의뢰가 들어와 작업한 경우예요. 인터넷에서 검색한 이미지로 람보르기니를 만들면서,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맨 처음 떠올린 사람이 데이비드 호크니였고요. 호크니는 만나기로 했는데 아쉽게도 불발됐죠.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릴 정도로 디지털에 밝은 분이니까, 혹시라도 검색하면 나올 수 있게 작품 뒤에 ‘호크니’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보셨는지는 모르겠네요.
Q. 당신 작품에서는 조각의 기존 문법에 대한 반항심이 느껴지기도 해요. 전통적인 조형 언어에서 벗어나 조각이라는 형식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느낌이랄까요?
A. 저는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이에요. 다만 제가 미술사(史) 자체를 너무 좋아해요. 조각이라는 형식에 자꾸 질문을 던지는 건 그래서인 듯해요. 작업의 태생이 일반 조각이 아닌 사진 조각이다 보니, 조각이라는 장르에 안착하기 위해 조각사(史)를 더 자주 인용하는 것도 있고요.
Q. 요즘 작가로서 하고 있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A. 당대에 엄청 잘나갔던 조각가들도 살아생전 작품이 팔리지 않아 괴로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조각이 맥을 이어가려면 미술관이나 개인 컬렉터들이 소장을 해야 하는데 막상 개인이 조각을 사기가 쉽지 않거든요. 원래 제 인생 모토가 ‘가늘고 길고 모질게’인데 그 말처럼 조각가로 오래 사는 게 목표예요. 오래 살아서 좋은 작품을 최대한 많이 남기고 싶어요. 제가 애들을 너무 늦게 낳아서, 그것 때문에라도 오래 살아야 해요.(웃음)
INTERVIEW #02
색띠가 전하는 치유의 힘
‘컬러 밴드’로 삶의 환희를 그리는 화가. 하태임은 매일 진을 입고 양평 작업실로 출근한다.
서양화가 하태임
Q. 작업실이 꼭 별장 같아요.
A. 4년 전 대학 전임교수직을 내려놓고 서울에서 양평으로 옮겨왔어요. 아빠 산소가 보이는 자리에 4층짜리 건물을 새로 짓고, 3층은 동양화가인 엄마의 작업실로 내어드렸죠. 나머지 공간은 모두 제가 쓰고요.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겠지만 제 작업은 특히 공간이 넓을수록 유리해요. 그래야 여러 작품을 동시에 작업할 수 있거든요.
Q. 여러 작품을 동시에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제 작업의 핵심이 ‘컬러 밴드(색띠)’인데요. 하나의 색띠를 완성하기까지 적게는 5번, 많게는 12번 덧칠 과정을 거쳐요. 저는 아크릴물감을 덧칠하는 횟수로 농도를 조절하거든요. 한번 색을 올리면 한두 시간은 말려야 다음 색을 올릴 수 있어요. 공간이 넓으면 칠이 마르는 동안 또 다른 작업을 하면 되니까, 그만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죠.
Q. 컬러 밴드 곡면이 컴퍼스를 대고 그린 것처럼 매끄러워요. 특별한 도구를 쓰나요?
A. 그냥 손으로 그려요. 몸을 컴퍼스의 축처럼 고정하고 팔을 날개처럼 움직여서요. 별로 어려운 작업은 아닌데 몸이 좀 고되기는 해요. 물감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면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두고 그려야 하거든요. 한번은 회전근개가 파열돼 어쩔 수 없이 캔버스를 세워서 그렸는데 물감이 흘러내린 모습이 의외로 마음에 들어, 이후로는 가끔 일부러 그렇게 작업하기도 해요.(웃음)
Q. 작품에 그날의 컨디션이 고스란히 반영되겠어요.
A. 정말 그래요. 단순한 작업처럼 보여도 색띠의 구성과 색의 조합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지거든요. 저는 밑그림 없이 큰 틀만 정해두고 자유롭게 작업하는 편이라, 매일의 마음 상태가 아주 중요해요.
Q. 활처럼 휜 밴드를 화려한 색채로 표현하는 지금의 스타일은 어떻게 완성되었나요?
A. 프랑스 유학 시절 초기에는 한글이나 알파벳 같은 문자를 그린 다음 그걸 다시 색으로 덮거나 거칠게 지우는 식으로 작업했어요. 외국 땅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언어가 가진 한계성에 관심이 많아진 시기였거든요. 그러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작품에 변화가 찾아왔죠. 문자를 지우려는 욕구를 내려놓고 몸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가다 보니 그림이 고요해지고 밴드들이 살아나더라고요. 문자를 지우는 행위가 그림 그리는 행위로 치환 되면서, 제가 지나간 궤적이 그대로 밴드가 되어버린 거죠.
Q. 유학 시절 발표한 초기 작업은 지금과 달리 어둡고 그로테스크해요.
A. 그런 그림도 여전히 좋아해요. 거칠고 지저분한 그림을 그릴 때의 쾌감이 있어요. 자신의 우울을 계속 파고 들어갈 때의 희열이랄까요?(웃음)
Q. 흔히 화가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색이 단순해진다고 하던데, 당신은 어떤가요?
A. 재밌는 얘기네요. 저도 어쩐지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지금 그림만 해도 2~3년 전에 비하면 색 조합이 많이 축소됐거든요. 예전에는 굉장히 다양한 색깔을 썼다면 지금은 일부 특정 색깔에 집중해서 그것들을 반복하거나 서로 차이를 두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Q. 컬러 밴드 연작에 ‘Un Passage(통로)’라는 제목을 붙였어요. 무슨 의미인가요?
A. 유학 시절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수많은 통로(Un Passage)를 만났어요. 통로를 지나 밖으로 나오면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이 펼쳐지곤 했죠. 저는 제 그림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해요. 과거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거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거나, 사람들에게 완전히 다른 세상을 열어줬으면 좋겠어요.
Q. 컬러 밴드의 명랑한 형태와 색채 때문일까요? 당신 그림을 보면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어요.
A. 곡선에는 확실히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아요. 특유의 율동감과 생명력, 어딘가로 흘러가는 듯한 방향성과 운동성이 느껴지죠. 한번은 부산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하는데, 제 또래 여성이 제 손을 잡고 우셨어요. 자기가 너무 우울하고 아픈 시기에 제 그림을 보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요. 감사했죠. 마침 저도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몸이 여기저기 아프던 터라 더 공감이 갔어요.(웃음)
Q. 그림만 보면 굉장히 밝고 낙천적인 사람일 것 같은데 평소 성격은 어떤가요?
A. 저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예술가 특유의 예민한 기질도 있고요. 남들 보다 기쁨을 크게 느끼는 만큼 슬픔도 더 확장해서 느낀다고 할까요? 제가 열여섯 살 때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제게는 인생의 멘토와도 같은 분이었기에 충격이 컸죠. 비교적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그처럼 완벽한 단절을 경험하면서 삶의 유한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Q. 예술가 집안으로 유명하죠. 아버지가 한국 1세대 추상화 거장인 故하인두 화백이고 어머니는 동양화가, 남동생은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A. 어릴 때는 아빠의 그늘이 너무 싫었어요. 엄마 따라 전시장 가는 것도 싫었고요. 오죽하면 대학원 박사과정 들어갔을 때 교수님들께 “저는 하인두의 딸로 불리는 게 싫다”고 당돌하게 못 박았을 정도예요. 예전에는 제 그림이 아버지 그림과 닮았다는 말이 참 싫었거든요. 이제는 그 모든 게 이해가 가요. ‘나의 가장 큰 스승은 아빠였구나’ 싶고. 어려서부터 아빠가 그린 그림, 아빠가 남긴 책들을 보고 자랐으니까요.
Q. 아버지가 지금 당신 그림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요?
A. 저도 그게 제일 궁금해요. 부디 좋아하셨으면 좋겠어요. 어릴 때 남동생이랑 둘이 빨랫비누로 사자를 조각한 적이 있어요. 전 그때 남동생이 더 정교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엄마 말이, 아빠가 제가 만든 걸 보고 굉장히 대견해하셨대요. “어쩜 이렇게 대범하게 작업을 했지? 고놈 참!” 하고 감탄 하면서요.(웃음)
Q. 요즘 집중하고 있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A. 3월에 전시가 예정돼 있어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고집스럽게 하나의 법칙 아래 작업해왔다면 이번에는 컬러 밴드 위에 액션 페인팅 기법을 더하거나, 하나의 밴드에 두 가지 색을 중첩시키고 마티에르(질감)를 살리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죠. 유리나 나무를 이용한 행잉 작업도 고민 중이고요.
Q. 평소에는 뭘 입고 작업하나요?
A. 히트텍 상의에 유니클로 진이 제 작업복이에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요. 그림 그릴 때 진만큼 편한 옷이 없어요. 가격도 합리적이고, 살에 닿는 촉감도 좋고, 무엇보다 물감이 묻어도 어색하지 않아요. 제가 사용한 색깔들이 시간의 흔적처럼 자연스럽게 옷감에 남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Q. 덧칠을 반복하는 행위에서 장인정신이 느껴져요. 장인정신은 유니클로 진의 제작 과정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한데요.
A. 가끔 아무것도 그리기 싫은 날이 있어요. 마음이 와글와글하다고 해야 하나. 근데 작업실에 출근해서 캔버스에 첫 붓질을 하는 순간 주변이 온통 무음이 돼요. 산다는 게 별것 아니구나, 이 날들이 모여 삶이 되는구나 싶고요. 저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창밖 풍경은 계속 변하고 있고. 저에게 장인정신은 그런 것 같아요. 꾸준한 반복을 통해 작은 차이를 발견해가는 일이요.
Q. 하태임의 그림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는 무엇인가요?
A. 가끔 그림이 삐져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어떤 색을 올리면 뾰로통했던 그림이 확 풀어져요. 작업하다 보면 이런 식으로 그림이 계속 제게 말을 걸어와요. 저는 제 그림이 최종적으로 전하는 감정이 기쁨이었으면 좋겠어요. 삶의 기쁨, 삶의 환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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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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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진 이노베이션 센터에서 개발한 기술을 활용한 Men’s 레귤러 피트 진(68 blue)과 2017년 동일 제품을 비교한 데이터입니다. 물 절감량은 제품별로 상이합니다.
* 셀비지 진은 블루 사이클 진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