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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QLO JEANS

진심을 담은 진

옷장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선반 한쪽에는 늘 꺼내 입는 진이 놓여있습니다. 가볍고 편안하게 티셔츠와 입고 나가도, 업무 미팅에 테일러드 재킷과 입고 나가도 잘 어울리는 인생 진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진 한두 벌씩은 갖고 있을 정도로, 진은 가장 익숙하고 대중적인 옷입니다. 유니클로는 이토록 친숙한 진을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간결함(Simplicity), 좋은 품질(Quality), 혁신적 시도(Innovation), 지속가능함(Sustainability). 이 네 가지 요소는 유니클로 진의 키워드입니다. 불필요한 것은 덜어내고, 편안함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특징은 언제 어디서나 모두의 라이프스타일에 녹아들기 위한 최적의 접근입니다. 원단 선택부터 직조까지, 섬세한 장인정신으로 대표되는 카이하라 데님과의 긴밀한 협력, 로스앤젤레스의 JIC(Jeans Innovation Center) 설립을 통한 최첨단 기술의 접목, 그리고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한 친환경적 배려와 창의적 시도. 유니클로 진의 A부터 Z까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진이라는 한 아이템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완벽성과 진정성이 강렬하게 전해집니다. 다재다능함과 진심을 담은 유니클로 진은 입고 있어도 또 입고 싶고, 언제나 곁에 두고 싶은 진입니다.

JEANS FOR ALL

일상 속 다양한 순간에 어울리는 진을 만나보세요.
화이트 진부터 다크 블루, 그레이 컬러 계열은 물론이고, 울트라 스트레치로 활동성을 더한 스키니 핏부터 편안하고 캐주얼한 보이프렌드 핏까지.
유니클로 진은 모두의 일상을 생각하며 함께합니다.

INTERVIEW

인터뷰

INTERVIEW #01

슬기로운
조각 탐구 생할

사진 조각의 창시자,
권오상 작가가 말하는 조각의 기쁨과 슬픔.

조각가 권오상

Q. 선반에 재미있는 물건이 많네요. 어릴 때 권오상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A. <소년중앙>을 즐겨 봤어요. 잡지 뒤쪽에 부록으로 입체 종이 공작이 붙어 있었거든요. 초등학교 때는 조립에 빠져 살았는데 조립만 하고 정작 결과물을 가지고 놀진 않았어요. 문방구에서 500원에 파는 <건담 대백과> 같은 불법 출판물도 열심히 모았죠. 막상 만화는 보지도 않으면서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건담이 무슨 내용인지 몰라요. 로봇의 변천사는 다 기억하지만요.

Q. 작업실에 계신 모습이 편안해보여요. 오래전부터 유니클로 옷을 입고 작업했다고요.

A. 맞아요. 어쩌면 유니클로가 내게 가장 잘 맞는 브랜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특히 진을 즐겨 입는데, 사이즈가 다양해 따로 수선할 필요가 없다는 게 좋아요.(웃음) 10여 년 전 런던에 유니클로 매장이 생겼는데 그때가 기억나네요. 당시 아내가 런던에서 공부해 자주 왔다 갔다 했거든요. 중심가인 피카딜리를 지나는데 힙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기에 가봤더니 유니클로 매장이 막 문을 열었더라고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유니클로는 굉장히 친숙한 브랜드 였던 터라 그 모습을 흥미롭게 구경했던 기억이 나요.

Q. 조각 위에 사진을 오려 붙이는 ‘사진 조각’ 작업을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어요. 사진 조각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A. 제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가 밀레니엄 직전이었어요. 당시 교내에 새롭고 아방가르드한 조각을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저 역시 새로운 형식을 만드는 일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대리석이나 브론즈(청동)로 만든 조각 작품을 어려서부터 굉장히 좋아했지만 그처럼 무거운 조각을 직접 만들기에는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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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처음 사진 조각을 선보였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A. 1999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린 그룹전으로 데뷔를 했는데요. 당시 루프가 굉장히 주목받던 공간이어서 관객이 엄청 많이 왔어요. 관계자들 반응도 좋았죠. 전시를 본 기획자들이 궁금하다며 제 작업실로 쳐들어오기 까지 했으니까요.(웃음)

Q. 데뷔 때부터 ‘설치미술가’가 아닌 ‘조각가’라는 호칭을 고집하고 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제 작품이 사진 장르에만 머문다면 앞으로 갈 길이 굉장히 좁을 거라 생각 했어요. 스스로 조각가다운 태도를 강조할 필요성을 느꼈죠. 제가 어려서부터 <월간미술> 같은 잡지를 즐겨 봐서 이를테면 누가 유명한 큐레이터고 유명한 기획자인지,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있었거든요. 업계의 동향이라 든가 작가가 되기 위한 톤 앤 매너 같은 게 기본적으로 몸에 배어 있던 터라,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자연스럽게 알아챈 것 같아요.

Q. 조각가라고 하면 망치를 든 석공을 떠올리는 사람이 여전히 많아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장인들이요.

A. 저는 장인 타입은 아닌 듯해요. 하지만 장인의 손끝에서 나오는 완벽함은 좋아해요. 그래서 장인 같은 스태프들과 일하고 있죠.(웃음) 저는 항상 조각을 제날짜에 제대로 완성하는 걸 목표로 삼아요. 예전에 쓰던 작업실 건물 1층이 금형 공장이었는데 공장 한편에 ‘납기일이 우리의 생명이다’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거든요. 그 말이 참 좋았어요.

Q. 사진 조각의 작업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A. 실물 촬영이 가능한 경우 대상을 다각도로 촬영하고, 유명인이나 동물처럼 실물 촬영이 어려울 때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이미지를 써요. 그러다 보면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서 촬영된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한 조각 위에 올려 지죠. 조각 하나에 한 사람의 생애가 들어가기도 하고, 전 세계에 퍼져 있던 특정 동물 이미지가 한데 합쳐지기도 하고요. 공중에 흩어져 있던 이미지들이 랜선을 따라 하나로 모이는 거예요.

Q. 사진 조각 표면이 깨진 화면처럼 왜곡돼 보이는데, 의도적인 건가요?

A. 맞아요. 실물과 결과물 사이에 오차가 있어야 예술성이 좀 더 발현될 것 같아서요. 평면을 입체로 만들려면 모자이크 형식으로 잘라 붙이거나 옷을 재단하듯 칼집을 내서 접어야 하는데, 사진을 입체로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화면이 나온 것도 있고요.

Q. 람보르기니, 부가티, 페라리 등의 슈퍼카를 실물 크기로 구현한 ‘더 스컬프쳐’ 시리즈에는 예외적으로 전통 조각 재료인 브론즈를 사용했어요.

A. 당시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앞둔 상태였는데, 많은 사람에게 주목을 받을 게 분명한 전시여서 이 기회를 잘 살려보자 싶었어요. 현대적인 사물을 만들되 전통적인 재료를 이용해 이참에 내가 조각가임을 스스로 확인해보기로 마음먹었죠. 브론즈로 자동차를 만들고 표면에 로댕의 조각처럼 울퉁불퉁한 붓 터치를 더해서요. 작업실 벽에 ‘대가의 터치를 흉내 내자’는 식의 캐치프레이즈를 걸어뒀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Q. 전통적인 조각 재료를 사용해본 소감은요?

A. 돌이켜보면 내심 어떤 로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사진 조각을 만들 때도 대리석 표면을 찍은 사진을 종종 사용했거든요. 막상 브론즈로 작업하다 보니 전에 없던 존경심이 생기더라고요. 몇천 년 동안 이어져온 재료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싶고. 슈퍼카 조각이 처음 나왔을 때 브론즈 공장 사장님이 “권 작가, 이 작품은 이제 천년만년 가는 거야” 하시는데 순간 마음이 경건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오래가는 대리석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요새는 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는 대리석도 기계로 깎거든요.

Q. 김혜자, 지드래곤, 데이비드 호크니 등 당대의 인물들을 사진 조각으로 만들기도 했어요.

A. 유명인의 사진 조각은 대부분 패션 잡지에서 의뢰가 들어와 작업한 경우예요. 인터넷에서 검색한 이미지로 람보르기니를 만들면서,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맨 처음 떠올린 사람이 데이비드 호크니였고요. 호크니는 만나기로 했는데 아쉽게도 불발됐죠.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릴 정도로 디지털에 밝은 분이니까, 혹시라도 검색하면 나올 수 있게 작품 뒤에 ‘호크니’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보셨는지는 모르겠네요.

Q. 당신 작품에서는 조각의 기존 문법에 대한 반항심이 느껴지기도 해요. 전통적인 조형 언어에서 벗어나 조각이라는 형식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느낌이랄까요?

A. 저는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이에요. 다만 제가 미술사() 자체를 너무 좋아해요. 조각이라는 형식에 자꾸 질문을 던지는 건 그래서인 듯해요. 작업의 태생이 일반 조각이 아닌 사진 조각이다 보니, 조각이라는 장르에 안착하기 위해 조각사()를 더 자주 인용하는 것도 있고요.

Q. 요즘 작가로서 하고 있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A. 당대에 엄청 잘나갔던 조각가들도 살아생전 작품이 팔리지 않아 괴로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조각이 맥을 이어가려면 미술관이나 개인 컬렉터들이 소장을 해야 하는데 막상 개인이 조각을 사기가 쉽지 않거든요. 원래 제 인생 모토가 ‘가늘고 길고 모질게’인데 그 말처럼 조각가로 오래 사는 게 목표예요. 오래 살아서 좋은 작품을 최대한 많이 남기고 싶어요. 제가 애들을 너무 늦게 낳아서, 그것 때문에라도 오래 살아야 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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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02

색띠가 전하는 치유의 힘

‘컬러 밴드’로 삶의 환희를 그리는 화가. 하태임은 매일 진을 입고 양평 작업실로 출근한다.

서양화가 하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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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업실이 꼭 별장 같아요.

A. 4년 전 대학 전임교수직을 내려놓고 서울에서 양평으로 옮겨왔어요. 아빠 산소가 보이는 자리에 4층짜리 건물을 새로 짓고, 3층은 동양화가인 엄마의 작업실로 내어드렸죠. 나머지 공간은 모두 제가 쓰고요.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겠지만 제 작업은 특히 공간이 넓을수록 유리해요. 그래야 여러 작품을 동시에 작업할 수 있거든요.

Q. 여러 작품을 동시에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제 작업의 핵심이 ‘컬러 밴드(색띠)’인데요. 하나의 색띠를 완성하기까지 적게는 5번, 많게는 12번 덧칠 과정을 거쳐요. 저는 아크릴물감을 덧칠하는 횟수로 농도를 조절하거든요. 한번 색을 올리면 한두 시간은 말려야 다음 색을 올릴 수 있어요. 공간이 넓으면 칠이 마르는 동안 또 다른 작업을 하면 되니까, 그만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죠.

Q. 컬러 밴드 곡면이 컴퍼스를 대고 그린 것처럼 매끄러워요. 특별한 도구를 쓰나요?

A. 그냥 손으로 그려요. 몸을 컴퍼스의 축처럼 고정하고 팔을 날개처럼 움직여서요. 별로 어려운 작업은 아닌데 몸이 좀 고되기는 해요. 물감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면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두고 그려야 하거든요. 한번은 회전근개가 파열돼 어쩔 수 없이 캔버스를 세워서 그렸는데 물감이 흘러내린 모습이 의외로 마음에 들어, 이후로는 가끔 일부러 그렇게 작업하기도 해요.(웃음)

Q. 작품에 그날의 컨디션이 고스란히 반영되겠어요.

A. 정말 그래요. 단순한 작업처럼 보여도 색띠의 구성과 색의 조합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지거든요. 저는 밑그림 없이 큰 틀만 정해두고 자유롭게 작업하는 편이라, 매일의 마음 상태가 아주 중요해요.

Q. 활처럼 휜 밴드를 화려한 색채로 표현하는 지금의 스타일은 어떻게 완성되었나요?

A. 프랑스 유학 시절 초기에는 한글이나 알파벳 같은 문자를 그린 다음 그걸 다시 색으로 덮거나 거칠게 지우는 식으로 작업했어요. 외국 땅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언어가 가진 한계성에 관심이 많아진 시기였거든요. 그러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작품에 변화가 찾아왔죠. 문자를 지우려는 욕구를 내려놓고 몸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가다 보니 그림이 고요해지고 밴드들이 살아나더라고요. 문자를 지우는 행위가 그림 그리는 행위로 치환 되면서, 제가 지나간 궤적이 그대로 밴드가 되어버린 거죠.

Q. 유학 시절 발표한 초기 작업은 지금과 달리 어둡고 그로테스크해요.

A. 그런 그림도 여전히 좋아해요. 거칠고 지저분한 그림을 그릴 때의 쾌감이 있어요. 자신의 우울을 계속 파고 들어갈 때의 희열이랄까요?(웃음)

Q. 흔히 화가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색이 단순해진다고 하던데, 당신은 어떤가요?

A. 재밌는 얘기네요. 저도 어쩐지 그렇게 될 것 같아요. 지금 그림만 해도 2~3년 전에 비하면 색 조합이 많이 축소됐거든요. 예전에는 굉장히 다양한 색깔을 썼다면 지금은 일부 특정 색깔에 집중해서 그것들을 반복하거나 서로 차이를 두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Q. 컬러 밴드 연작에 ‘Un Passage(통로)’라는 제목을 붙였어요. 무슨 의미인가요?

A. 유학 시절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수많은 통로(Un Passage)를 만났어요. 통로를 지나 밖으로 나오면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이 펼쳐지곤 했죠. 저는 제 그림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해요. 과거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거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거나, 사람들에게 완전히 다른 세상을 열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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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컬러 밴드의 명랑한 형태와 색채 때문일까요? 당신 그림을 보면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어요.

A. 곡선에는 확실히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아요. 특유의 율동감과 생명력, 어딘가로 흘러가는 듯한 방향성과 운동성이 느껴지죠. 한번은 부산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하는데, 제 또래 여성이 제 손을 잡고 우셨어요. 자기가 너무 우울하고 아픈 시기에 제 그림을 보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요. 감사했죠. 마침 저도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몸이 여기저기 아프던 터라 더 공감이 갔어요.(웃음)

Q. 그림만 보면 굉장히 밝고 낙천적인 사람일 것 같은데 평소 성격은 어떤가요?

A. 저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예술가 특유의 예민한 기질도 있고요. 남들 보다 기쁨을 크게 느끼는 만큼 슬픔도 더 확장해서 느낀다고 할까요? 제가 열여섯 살 때 아빠가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제게는 인생의 멘토와도 같은 분이었기에 충격이 컸죠. 비교적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그처럼 완벽한 단절을 경험하면서 삶의 유한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Q. 예술가 집안으로 유명하죠. 아버지가 한국 1세대 추상화 거장인 하인두 화백이고 어머니는 동양화가, 남동생은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A. 어릴 때는 아빠의 그늘이 너무 싫었어요. 엄마 따라 전시장 가는 것도 싫었고요. 오죽하면 대학원 박사과정 들어갔을 때 교수님들께 “저는 하인두의 딸로 불리는 게 싫다”고 당돌하게 못 박았을 정도예요. 예전에는 제 그림이 아버지 그림과 닮았다는 말이 참 싫었거든요. 이제는 그 모든 게 이해가 가요. ‘나의 가장 큰 스승은 아빠였구나’ 싶고. 어려서부터 아빠가 그린 그림, 아빠가 남긴 책들을 보고 자랐으니까요.

Q. 아버지가 지금 당신 그림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요?

A. 저도 그게 제일 궁금해요. 부디 좋아하셨으면 좋겠어요. 어릴 때 남동생이랑 둘이 빨랫비누로 사자를 조각한 적이 있어요. 전 그때 남동생이 더 정교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엄마 말이, 아빠가 제가 만든 걸 보고 굉장히 대견해하셨대요. “어쩜 이렇게 대범하게 작업을 했지? 고놈 참!” 하고 감탄 하면서요.(웃음)

Q. 요즘 집중하고 있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A. 3월에 전시가 예정돼 있어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고집스럽게 하나의 법칙 아래 작업해왔다면 이번에는 컬러 밴드 위에 액션 페인팅 기법을 더하거나, 하나의 밴드에 두 가지 색을 중첩시키고 마티에르(질감)를 살리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죠. 유리나 나무를 이용한 행잉 작업도 고민 중이고요.

Q. 평소에는 뭘 입고 작업하나요?

A. 히트텍 상의에 유니클로 진이 제 작업복이에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요. 그림 그릴 때 진만큼 편한 옷이 없어요. 가격도 합리적이고, 살에 닿는 촉감도 좋고, 무엇보다 물감이 묻어도 어색하지 않아요. 제가 사용한 색깔들이 시간의 흔적처럼 자연스럽게 옷감에 남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Q. 덧칠을 반복하는 행위에서 장인정신이 느껴져요. 장인정신은 유니클로 진의 제작 과정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한데요.

A. 가끔 아무것도 그리기 싫은 날이 있어요. 마음이 와글와글하다고 해야 하나. 근데 작업실에 출근해서 캔버스에 첫 붓질을 하는 순간 주변이 온통 무음이 돼요. 산다는 게 별것 아니구나, 이 날들이 모여 삶이 되는구나 싶고요. 저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창밖 풍경은 계속 변하고 있고. 저에게 장인정신은 그런 것 같아요. 꾸준한 반복을 통해 작은 차이를 발견해가는 일이요.

Q. 하태임의 그림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는 무엇인가요?

A. 가끔 그림이 삐져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어떤 색을 올리면 뾰로통했던 그림이 확 풀어져요. 작업하다 보면 이런 식으로 그림이 계속 제게 말을 걸어와요. 저는 제 그림이 최종적으로 전하는 감정이 기쁨이었으면 좋겠어요. 삶의 기쁨, 삶의 환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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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03

이윤경

내추럴 와인바 '마나'대표

마나(Mana)는 ‘신이 지니고 있는 본래 힘’이라는 의미의 하와이 말로, 생기가 넘친다는 뜻을 가졌다. 생명력 넘치는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을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길 꿈꿨던 이윤경 대표는 지난해 9월 마나를 오픈했다. “제가애정을 갖고 오랫동안 모아오고 있는 와인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제 자신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손님에게 따로 와인 리스트를 제공하진 않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을 바탕으로 손님의 당일 기분이나 선호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 후 와인을 추천드립니다. 그래서인지 만족도가 높아요.” 제철 재료로 와인과 어울리는 요리도 직접 하는 이윤경 대표가 즐겨 입는 것은 진이다. “요리를 할 때 뭐가 묻어도 개의치 않고 활동성 있게 움직이기에 진만큼 좋은 건 없죠. 워크웨어로서 진의 면모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에요.”

INTERVIEW #04

장현석

빈티지 숍 노 바운더리즈 대표

“일본에서 일하던 시절, 인상 깊었던 것이 있어요. 은퇴 후 가장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누구일까 눈여겨보니 골동품이나 빈티지 숍을 운영하는 80~90대 할아버지들이더라고요. 매일 자신이 수집한 걸 보러 출근하고, 이따금씩 숍에 들르는 젊은이들과 이야기도 주고받는 그들을 보며 취미처럼 아주 오랫동안 즐기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노 바운더리즈의 대표 장현석은 단순히 옷을 파는 빈티지 숍이 아니라 의미 있는 패션을 수집하고, 아카이브를 만들어가며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지키고자 한다. 비주얼 디렉터도 겸하고 있는 그는 데님, 캐시미어, 가죽을 사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빈티지 수집이라고 말한다. “데님이야말로 시간이 묻어나는 의미있는 빈티지 아이템이에요. 유니클로의 진은 카이하라 공장에서 만들어지잖아요. 좋은 원단으로 진에 대한 애정과 정통성을 지켜나가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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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05

백승화, 백종호 남매

머스터드 샌드위치/케이터링 대표

(백승화)“음식은 맛있는 게 가장 중요해요.” 많은 사람들과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간결한 구성의 샌드위치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백승화, 백종호 남매의 머스터드 샌드위치는 실용적이고 진정성 있는 유니클로 진과도 닮아있다. (백승화)“저는 현실적인 부분에, 동생은 요리를 통해 아티스틱한 면모를 드러내는 부분에 집중하면서 협업을 하고 있어요.” 동생의 비스크 파스타를 가장 좋아하는 누나 백승화는 아이디어와 새로운 비전을 공유하며 남매의 협업을 이끄는 존재다. (백종호)“누나와 함께라면 망설인 적이 없어요. 인생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부모님처럼 든든한 존재죠. 항상 서로를 믿고, 누나가 해보자고 하면 망설임 없이 함께 직진해요.” 최근 남매는 이탈리아 남부 폴리아주 바리 지역을 여행하며 요리를 하는 순수한 기쁨과 영감을 나눴다. (백종호)“좋은 식자재로 만드는 기본 파스타가 너무 맛있었어요. 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완전한 베이직 아이템인 진은 그 자체로 깔끔하고, 신뢰를 주죠.” (백승화) “어디에나 매치해도 좋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저는 평소에 넉넉한 핏을 즐기는 편입니다.”

INTERVIEW #06

손정민

일러스트레이터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 식물, 동물 등 친근한 소재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손정민. 뉴욕에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멋진 뉴요커들을 스케치하고 동료의 얼굴을 그려 생일선물로 주었던 경험은 그녀가 사람을 그리는 작가가 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면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여성적인 식물 그림은 어떻게 그리게 되었을까? “가족과 시골로 여행을 가면 줄곧 어머니가 이건 무슨 풀이고, 어떤 꽃이라고 설명해주시며 향기도 맡아 보라고 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뉴욕에서 회사생활을 하며 힘들 때면 집 근처 칼 슈츠 공원(Carl Schurz Park)에 가서 친구와 스케치를 했어요. 나중에 보니 스케치 대부분이 공원에서 본 식물이더라고요.” 자신의 그림처럼 잔잔하고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유니클로 진을 입고 등장한 손정민은 그림 속에 담긴 진심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제 전시를 보고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어요. 제 그림에 담긴 진정성이 그런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시간이 흘러 느끼게 된 건데, 제 자신도 기분이 좋지 않거나 슬플 때 그림을 그리면서 위안을 받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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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07

김지은

슈즈 브랜드 '레프트 라이트' 대표

“편안한 착화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슈즈를 만들고 싶었어요.” 스타일링에 제약이 많았던 핸디캡을 오히려 강점으로 승화시켜 누구나 편히 신을 수 있는 신발을 만들어 보겠다는 김지은 대표의 의지는 5년이 넘어도 한결같은 레프트 라이트를 탄생시켰다. “트렌드에 따르지 않고 중심을 잡는 건 쉽지 않았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에 충실하고 진정성을 잃지 않아야 하죠.” 진심이 담긴 브랜드를 운영하는 김지은에게 레프트 라이트는 어떤 의미일까? “신발은 왼쪽, 오른쪽 짝을 이루잖아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혼자일 때보다 유닛일 때 더 시너지가 나고 서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죠. 레프트가 ‘나’ 라면, 라이트는 ‘또 다른 누군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신발 외에도 짝이 있는 다른 제품들을 만들면서 스토리를 계속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목표예요.” 김지은이 즐겨 입는 옷은 다름 아닌 진이다. “골반이 핏 되는 하이라이즈 진은 일할 때 입기 편해요. 아래쪽으로 갈수록 넉넉한 실루엣이라면 더욱 좋죠.”

INTERVIEW #08

최용준

건축 사진가

“국내외의 다양한 건축물과 공간을 촬영하며 작업하는 활동적인 일을 하다 보니 평소 진밖에 안 입어요. 일을 하는 데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해지거나 오염돼도 그 자체로 매력적인 것이 진이잖아요.” 위성 지도로 건축물을 탐색하고, 높다란 시선에서 건축의 새로운 묘미를 발견하는 사진가 최용준은 필요한 장비를 직접 들고 움직이며, 주로 혼자 작업을 한다. “좋은 장소를 직접 찾아 다니고, 무생물을 찍다 보니 고독하고 외롭기도 하지만, 그래서 좋습니다. 셔터를 누르기 전의 고요함도 좋고요. 내 시선에 집중하면서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한데, 혼자 문제를 푸는 듯한 그 느낌이 제게는 잘 맞는 것 같아요.” 그에게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건축물은 무엇이었을까? “건축가 단게 겐조가 지은 도쿄의 성 마리아 대성당에 다시 방문해서 사진을 찍고 싶어요. 경건한 느낌을 공간의 힘으로 표현한, 존재감 넘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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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09

김옥

옻칠 공예가

2016년 아트퍼니처 컬렉션을 시작으로 ‘옻칠’이라는 전통적이지만 동시에 낯설기도 한 공예 작업을 선보이는 김옥 작가. 회화 작업을 비롯해 테이블, 스툴, 사이드 테이블과 같은 가구, 조각 등 그녀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흔히 알고 있는 옻칠 공예와는 다른 구조적인 형태와 다양한 색채에 이끌리게 된다. “색을 많이 넣는 편이다 보니 형태는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진 듯한 탑을 떠올리며 미니멀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겹겹이 쌓듯이 섬세하게 칠을 거듭하고, 이내 평평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옻칠에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 장인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표현 방식은 제 나름대로 하더라도, 밑작업부터 마무리까지 작업에 있어선 쉽게 가지 않고 전통과 정도를 지키면서 하려고 해요.” 다양한 색으로 옻칠을 거듭하고, 다시 울퉁불퉁하게 칠을 벗기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이내 김옥 작가만의 신비로운 색채가 빛을 발한다. 작가가 작업할 때 항상 입는다는 진 역시 마찬가지다. “진에도 온갖 색들이 묻어있어요. 작업실 안에서건 밖에서건 언제 어디서나 입기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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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 유니클로 데님이 생산되는 카이하라의 이야기는 18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손으로 직접 짠 인디고 카스리 원단 제조와 함께 시작된 이곳은 현재 일본 데님 시장 점유율 1위라는 세계적인 데님 생산지로 성장했습니다. 카이하라에서는 원단 선택부터 마무리까지 데님 제조 전 과정이 자체적으로 이뤄집니다. 이곳에선 크게 스피닝(Spinning), 염색(Dyeing), 직조(Weaving)라는 세 가지 중요한 과정을 통해 데님을 만듭니다. 데님을 만드는 일은 실을 뽑는 방적 과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00% 컴퓨터 제어로 운영되는 카이하라 공장에서 만들어진 데님은 최고 품질의 원사를 보장하기에 보다 좋은 감촉을 가집니다. 숙련된 장인의 비법으로 완성되는 카이하라의 염색 과정 또한 특별합니다. 카이하라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로프 염색기를 개발하고 도입한 회사입니다. 실을 엮어 로프로 만든 다음 인디고 염료에 담갔다가 꺼내어 대기 중에서 산화시키는 작업을 반복하는 이 기계는 데님 특유의 페이딩을 만드는 염색 원사를 생산합니다. 이때 균일하고 짙은 청색을 얻기 위한 염색액의 농도와 온도, 염색 빈도 및 속도, 산화 시간에 대한 미세한 조정은 필수입니다. 카이하라의 장인들은 경험과 직관으로 염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카이하라의 독특한 점은 최첨단 컴퓨터 제어 모델부터 희귀한 예전 방식의 셔틀 직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조 기계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식 기계는 아름답고 매끄러운 직물을 짤 수 있으며, 오래 전 실제로 셀비지 데님을 생산하는 데 사용되었던 셔틀 직기는 복고풍의 매력이 가득한 질감을 만들어냅니다. 숙련된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장인들은 이 과정에서도 섬세한 조정과 수리를 거듭하며 직기를 다루고 관리합니다. 이처럼 카이하라는 전통과 혁신, 장인정신을 통해 데님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탐구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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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소재, 빈티지. 진에 대한 모든 것이 있는 곳. 2016년 가을, 패스트 리테일링은 한 가지 큰 목표를 염두에 두고 로스앤젤레스에 JIC(Jeans Innovation Center)를 설립했습니다. 샘플, 트렌드 및 패브릭 아카이브를 한 곳에 모아 시대를 초월하는 진을 제작하는 목표와 비전이 담긴, 유니클로 진이 탄생하는 핵심적인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다양한 전문가와 함께 운영하는 JIC는 패션의 미래를 정의할 혁신적인 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곳에서는 데님 원단의 개발뿐만 아니라 진 자체의 본질을 재평가하고 연구합니다.
디자인과 트렌드, 착용감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최첨단 가공 방법을 사용하여 우리의 일상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진의 완벽함을 향해 나아갑니다. 궁극의 라이프웨어를 지향하는 유니클로가 가진 진에 관한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JIC의 진화는 계속됩니다. 유니클로는 디자인, 편안함, 환경적 책임을 염두에 두고 진을 만드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패션과 기술이 제공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더 나은 미래로 인도하고자 하는 유니클로 라이프웨어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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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생각하는, 똑똑한 진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유니클로는 지속가능한 진을 만듭니다. 로스앤젤레스 JIC(Jean Innovation Center)에서 개발한 최첨단 기술은 환경을 생각하는 유니클로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일반적으로 진을 만드는 과정에는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공정이 존재하며 공정을 관리하는 직원에게 큰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자연스러운 진의 색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물과 수작업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블루 사이클 진은 이러한 과정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기술입니다. 진 제작의 마무리 가공 공정에 사용되는 물의 양을 최대 99%*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블루 사이클 진 기술의 핵심입니다. 또한 사람이 사포로 문질러 만드는 빈티지 가공을 레이저로 대체해 직원의 수작업 부담을 줄임으로써 근무 환경을 개선합니다. 유니클로의 지속가능한 진은 환경과 사람을 함께 생각한다는 점에서 더욱 사려 깊습니다. 블루 사이클 진은 유니클로가 지향하는 지속가능성을 향한 커다란 하나의 발걸음이며, 앞으로도 이러한 탐구와 시도는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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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사이클 진은 진 제작의 마무리 가공 공정에 사용되는 물의 양을 최대 99%* 절감합니다. 물 한 잔 정도의 적은 양으로 동일한 품질의 진을 만들 수 있습니다.

* 2018년 진 이노베이션 센터에서 개발한 기술을 활용한 Men’s 레귤러 피트 진(68 blue)과 2017년 동일 제품을 비교한 데이터입니다. 물 절감량은 제품별로 상이합니다.

* 셀비지 진은 블루 사이클 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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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를 사용하여 클래식하고 빈티지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레이저 머신으로 인해 수작업이 줄어 모두에게 더 나은 작업 환경을 만들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