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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 스무 해, 처음 그 마음처럼

유니클로 스무 해, 처음 그 마음을 생각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어주는 마음입니다.
따뜻한 두 손을 맞잡는 일입니다.
식구들과 친구들, 이웃과 동료, 마침내 우리의 이어짐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유니클로는 그 자리에 있겠습니다.
여기와 거기를 이어주는 다리처럼 말입니다 .

서울 북한남삼거리 육교

김중용, 최세주, 박종규

세 친구의 일요일, 세 가지 색 캐시미어

누가 오늘의 센터가 될 것인가. 세 친구의 자리 배치를 놓고 질문을 던졌더니, 김중용 씨는 웃고, 박종규 씨는 생각하고, 최세주 씨는 “센터는 나”라며 바로 가운데를 차지한다. 세상은 복잡하다지만 ‘늘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정리되는 일도 있다. 말하자면 순리랄까. 무엇보다 세 사람은 서로를 알만큼 안다. 오늘의 센터 해프닝만 해도 이렇게 될 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셋은 직업이 같다. 브랜드의 마지막 한 끝을 책임지는 파워 마케터들. 시장도 알고 대중도 알지만, 무엇보다 서로를 알고, 애환을 나눈다. 서로 기획한 행사에 찾아가 부추기고 놀아주며 응원하는 일은 세 친구의 우정을 다지는 특별한 장이 되어준다. “이번 촬영을 앞두고 셋이 모여 얘기를 나눴어요. 우리는 프로다, 우리를 선택한 유니클로에 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평소에 입지 않는 색깔 옷을 받아도 자연스럽게 제 몫을 해내야 한다.” 셋 중 키가 큰 종규 씨가 설계도를 그리듯 말한다. 중용 씨는 웃는다. 세주 씨는 체크한다. “종규 형 발 각도 맞추고, 중용이 형 턱 자꾸 올라가.” 한바탕 촬영은 모두를 만족시킨 듯한데, 세주 씨가 쿠키 영상 같은 여운을 남긴다. “분명히 내가 센터는 센터였는데, 왠지 에이스는 아니었던 것 같아. 나한테는 막 요구가 많은데, 김중용은 가만히 웃고만 있다가 끝났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세 친구가 육교를 건너간다. 캐시미어처럼 부드러운 오후가 아직 몇 시간쯤 남아있다.

서울 인왕산 돌다리

김하윤, 조은교

티격태격 모녀의 말랑말랑 퍼프테크

옥인동 마을버스 종점에서 수성동 계곡으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인왕산 자락이 마치 동네 뒷동산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등산보다 마실에 가까운 차림들을 하고 있기 일쑤. “집은 구기동이고 사무실은 누하동이에요. 예전엔 부암동에 살았고요. 북한산, 인왕산, 북악산 곳곳으로 산책을 다닙니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김하윤 씨에게 이 동네는 서울의 심장이자 가족의 놀이터다. 조약돌 같은 얼굴이 엄마를 쏙 빼닮은 딸 은교도 산길을 걷는 일상이 자연스럽다. “엄마와는 친구처럼 지내요. 옷 입는 취향도 비슷해요. 이런 얇은 패딩처럼 활동적인 옷이 좋아요.” 엄마도 은교를 친구처럼 대한다. “티격태격 얘기가 통해요. 사무실에서 가벼운 비즈니스 미팅을 할 때도 함께 있고요.” 김하윤 씨는 함께 하는 엄마, 실천하는 엄마, 끝내 해내는 엄마다. 여름에는 고무보트에 아이 둘을(은교에겐 오빠도 있다) 태우고 무인도로 노를 젓고, 겨울이면 스키장에 아예 캠프를 차릴 기세로 진격한다. 자라는 은교도 점점 엄마의 씩씩한 에너지를 닮게 될까? “은교는 겁을 먹지 않아요. 저는 열정 못지않게 겁도 많거든요.” 은교의 검은 콩 같은 눈이 엄마를 빤히 쳐다본다. 엄마도 은교를 본다. 눈을 먼저 깜박이는 사람이 지는 놀이인가? 웃음이 났는지 은교가 엄마에게 안긴다. 하윤 씨의 팔이 둥글게 길어진다.

서울 살곶이다리

조인희, 김현승

모델과 사진가와 기능성 다운의 조용한 관계

훤칠하고 늘씬해서 나란히 서있으면 대번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는 사이. 하지만 두 사람은 별다른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다. “꾸준히 함께 하는 프로젝트가 있고, 만난 지는 삼사 년 정도 되었어요. 그런데 ‘안녕하세요’ 인사 말고 다른 말은 세 마디쯤 해봤나?” 사진가 김현승 씨가 모델 조인희 씨와 알고 지낸 ‘말 없는’ 시간을 이야기한다. “어색하진 않고 그냥 편안해요.” 얼마 전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인희 씨는 완전히 새로운 일상을 겪고 있다. “어릴 때부터 길이감이 좋아서 유니클로 바지를 많이 입었어요. 요즘엔 아기 옷을 자주 보고 있어요.” 오늘은 카메라를 들지 않았지만, 현승 씨는 예리한 관찰자의 눈으로 모델들의 순간을 잡아낸다. “지금 인희 씨의 파카와 바지를 보면 걸음걸이가 어떨는지 짐작이 가죠.” 그리고 현승 씨는 유니클로의 오랜 팬이다. “제가 입은 이 하이브리드 파카가 아마 유니클로에서 가장 따뜻한 기능성을 갖춘 모델일 거예요. 그런데 지금 사고 싶은 건 방금 전 온라인에 풀린 U 라인 파카예요.” 그 말을 듣고 인희 씨가 유니클로 앱을 켠다. 대화는 거기서 멈추고 주위는 조용해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방금 두 사람의 조용한 폭풍의 쇼핑이 시작되었다.

서울 잠수교

전아름, 김원선

맑은 아침 램스울의 연인

그래픽 디자이너 김원선 씨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전아름 씨는 동료이고 친구이고 연인이다. 아홉 살 시바견 이구도 함께 산다. “백구나 황구처럼 구로 끝나는 이름을 궁리하다가 이구라고 지었어요.” 원선 씨가 조용조용 이구를 소개하자 아름 씨가 이어받는다. “고양이도 다섯 마리 있어요. 모두 유기묘인데 한 마리씩 차례로 왔어요.” 합이 여덟이니 드물게도 대식구다. 하지만 우당탕 북적북적 같은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두 사람의 침착한 말투를 느끼건대 왠지 햇살 가득한 오후의 조용한 실내가 그려진달까. “맞아요, 이구도 거의 짖지 않아서, 한 달에 한 번쯤 서프라이즈~ 목소리를 들려주는 정도니까요.” 두 사람이 어떤 세계를 꿈꾸고 가꿔왔는지, 또한 여전히 보살피는 중인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그리고 얼마 전엔 결실처럼 집을 지어 이사했다. “평창동 나무 속에 파묻혀 사는 것 같은 집을 지었어요. 우리 생각이 그대로 들어간 집이라 여느 다른 집들과는 좀 달라요.” 침실은 아주 작고, 독립적인 공간이 널찍하고, 소파 없는 거실 한가운데는 천장을 뚫어 중정을 들였다고 아름 씨가 얘기해준다. “중정을 보는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쉴 때도, 일할 때도, 밤에 술을 마실 때도 중정을 봐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봉평으로 캠핑을 떠난다. “캠핑을 가도 내내 비슷한 느낌이 이어져요. 오늘 입은 니트처럼 평소에 입던 옷을 거기서도 그냥 입어요.”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 함께 세상을 만든다는 것의 간결한 의미를 생각한다. 모처럼 손을 잡아본다며 웃는 두 사람에게 맑은 아침이 왔다.

서울 장충단 공원 수표교

장일구, 장진민

아버지와 아들의 기차 여행을 위한 라이트 다운

아침에는 옛 노래 제목처럼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었는데, 정오에는 이파리 하나하나가 펜으로 그린 듯 선명해지는 날씨. 원래 청계천에 있던 수표교가 새로이 자리를 잡은 곳은 장충단 공원이다. “저기가 신라호텔이고, 그 아래가 장충체육관이야.” 아버지 장일구 씨가 천천히 기억의 책갈피를 들춘다. 아들 장진민 씨는 귀를 가까이 그 얘기를 듣는다. “몇 해 전 아버지께 뇌경색이 왔어요. 꾸준히 재활을 해서 좋아지고 계시고요. 어렸을 땐 아버지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제가 먼저 곁으로 가게 되네요.” 장진민 씨는 국가대표 유도 선수였다가 지금은 은퇴하고 역무원이 되었다. 고향은 춘천, 유도는 진민 씨를 강하게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의 바람으로 시작되었다. “아버지께 칭찬을 들은 기억이 별로 없어요. 소년체전에서 첫 금메달을 땄을 때도 덤덤하셨어요. 어쩌다 시합에 오시면 바짝 긴장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아버지는 옛 얘기를 들으며 그저 웃으신다. 가족은 번갈아 서로를 돌보는 관계일 테니, 예전에 아버지가 진민 씨를 이끌었다면 지금은 진민 씨가 아버지의 손을 잡는다. “고향인 춘천 얘기를 자주 하세요. 저도 마침 경춘선 역에서 근무하고 있고요. 올겨울엔 기차를 타고 춘천여행을 갈 생각입니다. 아버지랑 빙어를 잡던 곳에 가보고 싶네요.” 그 여행이 따뜻했으면 하는 바람으로부터 부자가 입고 있는 울트라 라이트 다운이 유난히 기특해 보였다.

서울 원효대교

박창용, 바둑이, 이영주

수플레얀 스웨터를 입고 바둑이와 강변에서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브랜드 오너인 박창용 씨는 아홉 살 잭 러셀 테리어와 둘이 산다. 이름은 바둑이. “처음 만났을 때 눈에 까만 점이 바둑알처럼 빛나서 지은 이름입니다.” 산책은 하루에 두 번, 아침엔 얼른얼른 동네 한 바퀴를 돌고, 해질 무렵엔 한강에서 길게 걷는다. “바둑이가 워낙 활달해서 한가한 산책은 아니에요. 긴장감 넘치는 유산소 운동이랄까요.” 그러고 보니 바둑이는 아까부터 계속 점프를 하고 있다. “겨울이 오면 바둑이한테도 옷을 입혀줘요. 유니클로에서 애완견 제품이 나오면 좋을 것 같은데, 이런 부드러운 스웨터도 예쁘고, 히트텍도 좋고요.”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는 언제나 창용 씨의 바탕화면에서 가장 여러 폴더를 차지한다. 비누와 핸드크림으로 시작해 조금씩 영역을 넓히고 있는 창용 씨의 브랜드는 이번에 향수 출시를 앞두고 있다. “요즘 계속 집중해서 향기를 맡고 지냈더니 이런 산책이 정말 소중해요. 오늘처럼 미세먼지가 없는 날에는 심호흡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스려요.” 마포대교를 건너 걷다가 다시 원효대교를 건너 돌아가는 길. 오늘은 원효대교 아래에서 우연히 이영주 씨를 만났다. 오랜 친구 사이의 안부와 웃음소리가 정답다. 바둑이가 맨 앞에 서고, 셋은 같은 방향으로 노을 지는 강변을 따라 걸어간다.

서울 청계천 징검다리

우상준, 우수민

쌍둥이 남매의 징검다리 후리스

청계천에 맑은 물이 흐른다. 그리고 쌍둥이 남매의 시간은 언제나 두 배로 흐른다. 더 신나고, 더 즐겁고, 더 엄청나다. 돌보는 마음과 힘은 두 배를 넘어설 터, 열 살 우상준, 우수민 남매의 엄마 김석원 씨에게 ‘두 배’라는 말은 숫제 다짐과도 같다. “두 배로 힘들지만 두 배로 행복하다고 느껴요. 아주 심플한 결론이에요.” 그리고 두 아이는 점점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고 각자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수민이랑 제가 비슷한 점은 둘 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한다는 거예요. 다른 점은 하고 싶은 일이 달라요. 수민이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하고, 저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상준이가 수민이에 대해 말했으니 이번엔 수민이 차례 “둘 다 잘 뛰어놀아요. 스키나 수영 같은 운동을 좋아해요. 상준이랑 가장 다른 점은 애니메이션 취향이에요. 상준이는 <원피스>같이 모험하는 얘기를 좋아하고, 저는 미야자키 하야오 선생님의 예쁜 그림을 좋아해요.” 아이들은 곧 미래라는데 이렇게 풍부하고 야무진 미래가 오려는 걸까. 어울리는 고민과 실천은 어른들의 몫, 다만 아이들은 징검다리를 껑충껑충 뛰면서 세상의 또 다른 문을 열고 싶어 한다. 수민이가 작은 물고기 떼의 반짝임을 잠자코 응시한다. 상준이는 커다란 잉어의 헤엄을 따라 걷다가 날파리 떼와 마주쳐 휙 돌아선다. 둘이서 후리스를 입고 있으니 더 안아주고 싶어진다.

부산 부산항대교

김민지, 박가영

파우더 다운이 이어준 부산의 인연

“부산에서 태어났고, 학교 다니느라 서울에 잠깐 살다가, 지금은 부산에서 가족들과 함께 일해요.” 박가영 씨의 자기 소개 배턴을 김민지 씨가 사뿐 이어받는다. “저도 가영 씨처럼 부산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지내다가 다시 부산에 돌아왔어요. 약간 다듬어진 사투리가 비슷한 것 같네요.” 처음 만난 사이인데 어느새 미소와 공감이 번진다. 무엇보다 같은 바다를 보고 듣고 그리워한 시간이 같아서. 떠나야 했던 곳이자, 돌아오게 되는 곳, 고향이라는 말을 가영씨는 자연스럽게 쓴다. “고향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뭔가 진한 게 있죠.” 두 사람이 기억하는 유니클로는 그럼 어떻게 같거나 다를까. “퇴근하고 발레학원 갈 때 약간 시간이 뜨는데 유니클로 매장에서 시간을 보내곤 해요.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웬만한 직원보다 잘 알 거예요.” 이런 가영 씨의 매장 탐험은 야무진 결과를 얻었다. “제가 몸집이 작아서 키즈 코너에서 보물을 발견할 때가 많아요. 키즈용 바람막이는 제 찐찐템이에요.” 키가 큰 민지 씨는 반대의 경우다. “저는 발 사이즈가 커서 유니클로 남자 양말을 자주 사요. 서울에서 처음 모델 일을 한 것도 유니클로 행사였던 기억이 나고요. 인연이 있어요.” 두 사람의 환한 첫인상 사이로 바람이 분다. 태평양을 건너온 상쾌하고 따뜻한 바람이다. 이것도 인연인데 혹시 서로에게 어울릴 것 같은 유니클로 옷을 하나씩 고른다면? “저는 민지 님한테 큼지막한 체크셔츠가 어울릴 것 같아요.” “저는 가영 씨가 지금 입고 있는 다운 재킷이랑 터틀넥 스웨터요. 너무 귀여워 보여요.”

부산 부산대교

김재형, 배민기

시원시원한 두 남자의 따끈따끈한 웜팬츠

서핑은 젊음을 웅변한다. 나이가 아니라 태도로서. 그리고 지구를 느낀다. 몰아치는 파도와 밀려가는 파도, 물의 소리와 바람의 힘. 말하자면 서핑을 하는 모두는 지구의 아이가 된다. 그냥 부산이 아니라 힘주어 ‘붓싼’ 사나이라고 소개하고 싶은 두 남자는 부산 송정 바다를 일터삼아 하루하루 날씨와 함께 일한다. 수염을 기른 쪽이 김재형 씨, 머리를 기른 쪽이 배민기 씨. 두 남자는 일찌감치 서핑에 빠졌는데, 그 중에서도 스킴보드에 완전히 빠져있다. “익스트림!” 배민기 씨는 스킴보드의 매력을 한 마디로 선언한다. “스킴보드는 작고 가벼워요. 휴대가 쉽죠. 그때그때 재빨리 떠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에요.” 김재형 씨는 국내에 처음 스킴보드 전문 샵을 차린 선구자이고, 배민기 씨는 그곳에 회원으로 등록했다가 지금은 강습도 하는 실력자가 되었다. “아무래도 여름을 좋아하죠. 스킴보드는 수트를 입지 않고 해변을 내달리는 기쁨이 있으니까요.” 올해도 부산의 여름은 아름다웠다. 이제 부산의 겨울이 시작된다. “무조건 히트텍이죠. 엄청 좋아합니다. 요즘엔 바지나 아우터에도 히트텍 소재를 쓰더라고요. 정말 자주 입어요.” 촬영을 위한 스타일링이 아니라, 마치 자기 옷장에서 꺼내 입은 옷 같은 이유가 있었다. 부산의 겨울 바람은 차지 않아 따뜻하고, 서퍼들의 바지는 뜨끈뜨끈하다.

흰 머리 엄마와 긴 머리 딸이 서로 사주는 다운 조끼

대구의 여름에 대한 얘기는 자자하다. 그럼 대구의 겨울은 어떨까. “유니클로 히트텍은 대구에서도 필수품이에요. 식구들마다 색깔 별로 여러 개씩 있어요. 소재가 좋아서 그런지 변형이 없고 선이 똑바로 서있어서 오래 입어요.” 스스로를 대구 토박이라고 소개하는 이도현 씨의 은빛 헤어가 햇살에 반짝인다. “저도 엄마처럼 대구 토박이예요.” 유난히 까맣고 긴 머리를 넘기며 권민주 씨가 엄마의 팔짱을 낀다. 날씬한 조끼 형태의 파우더 다운이라서 팔짱을 끼는 동작이 날아갈 듯 가볍다. 흰 머리 엄마와 긴 머리 딸이 팔짱을 끼고 징검다리를 건넌다. 대구를 관통하는 신천에는 귀여운 수달이 산다는데, 멀리서 본 모녀의 모습은 마치 앳된 소녀들 같다. 서로에게 어울리는 옷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에 두 사람은 동시에 까르르 웃는다. “민주는 요만 했을 때부터 자기 옷을 자기가 사고 싶어 했어요. 지금은 제 옷도 민주가 골라줘요. 민주가 입으라는 걸 입으면 다들 예쁘다고 하고요.” 유난히 옷을 좋아하던 소녀는 결국 빈티지 옷을 파는 가게의 주인이 되었다. “세상 하나뿐인 빈티지와 유니클로처럼 든든한 기본 아이템을 섞으면 실용적이면서도 특별한 스타일이 생겨요. 이번에는 엄마에게 빈티지 원피스를 사드리고 싶어요. 이런 다운 조끼를 함께 입으면 근사할 것 같습니다.” 엄마가 그 말을 웃으며 받는다. “나는 너 이 조끼 사줄게.”

대구 대봉교

김윤희, 한영진

김교수님과 한교수님의 겨울 교복, 히트텍 팬츠

“대구는 교육 도시입니다. 대학생 자원의 50%가 타지역 학생들이죠. 인구와 자본이 동시에 들어와 스스로 활기를 돋우는 곳입니다.” 과연 교수님다운 첫 마디.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장 김윤희 교수는 대구를 잘 안다. “대구에는 자연재해가 없습니다. 그런 안정감이 대구의 기본을 이룹니다.” 꿈이거나 미래거나 뭔가를 펼치기에 든든한 바탕이 되어주는 도시. 한영진 대표는 그런 대구에서 섬세한 뿌리를 내리는 회사의 대표다. 세련된 그래픽 디자인을 근간으로 지역 업체들의 브랜딩을 도맡아 최선의 상태로 이끌어내는 일은 대학 강의로도 이어지고 있다. 두 사람은 그렇게 10년 전쯤 학교에서 만났다. 호칭은 두세 가지. “저는 김 교수님을 학장님이라고 부르고, 학장님은 저를 한대표라고 부르시죠.”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모두 교수님. “나고야에서 유학하던 시절, 유니클로의 강력한 CI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90년대 중반 유니클로의 첫 성장기를 현장에서 목격했죠.” 김 교수의 스피치에는 연구와 교육에 매진해온 사람만의 기운이 있다. 내가 알고 익힌 것을 기필코 나누며 전달하겠다는 신념. 그런가 하면 한 교수는 보다 감각적인 태도로 형식과 내용을 조합해낸다.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사무실이자 카페이자 아지트인 공간은 도시의 이목을 끄는 이벤트로 늘 생기가 돈다. “드셔보세요. 커피 맛이 괜찮을 거예요.“ 두 사람이 대봉교 난간에 서서 담소를 나눈다. 같은 회색 히트텍 바지를 입고 있으니, 사람과 사람, 건축과 도시의 유대감이 더욱 가지런해 보인다.

논산 미내다리

김경임, 장우철

서울의 아들과 논산의 엄마가 동시에 입는 후리스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여든세 살 엄마 김경임 씨는 동요 부르기를 좋아하고, 아들 장우철 씨는 그런 엄마를 좋아한다.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까지 펼쳐진 들판, 미내다리라는 예쁜 이름의 다리 위에서 엄마는 노래를 부르고 아들은 손뼉으로 박자를 맞춘다. “엄마, 따뜻하지? 부들부들 괜찮지?” 후리스 특유의 촉감이 처음엔 낯설다가, 지금은 만능으로 어디든 입고 다니신다는 논산의 엄마. “요즘같이 쌀쌀할 때 아침 일찍 밭에도 입고 가고, 동네 마실 갈 때도 입고, 집안일 할 때도 그냥 입은 채로 해요. 설거지하다가 물이 튀면 패딩 같은 건 자국이 생기는데, 이건 그럴 걱정도 없잖아요.” 서울에 사는 아들도 후리스를 집에서 입는다. “한겨울 편의점과 후리스는 쿵짝이 맞잖아요. 이왕이면 맨발에 슬리퍼를 신어야겠죠.” 도시와 농촌의 일상이 그렇게도 부드럽게 포개진다. 올겨울 일찌감치 엄마에게 후리스를 사드렸다는 아들. 그럼 아들에게 엄마가 사주고 싶은 옷은 뭘까. “아들은 어련히 알아서 잘 입을 테니, 저는 공주에서 농사짓는 여든일곱 살 우리 언니 김경례에게 따뜻한 유니클로 패딩 사주고 싶어요.” 그 말을 듣고 우철 씨가 엄마를 꼭 안는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말, 누군가를 안아주는 품, 서울에서든 논산에서든 세상의 볕은 골고루 따뜻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가을 소풍, 단풍 같은 램스 울

천년 고찰 선암사로 들어서는 아름다운 길에 아치형 돌다리가 있다. 조계산 계곡을 달음질친 물소리가 유난히 맑게 울리는 곳, 키가 190cm를 훌쩍 넘긴 아들 박선철 씨가 아버지 박한준 씨의 손을 잡고 조심조심 그 다리를 건넌다. “저는 진도에서 한 번 더 배를 타고 들어가는 관매도라는 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하지만, (아들인) 선철이는 키도 크고 발도 크고 멋진 운동 선수가 되었지요.” 프로 킥복싱 선수 박선철 씨의 신발 사이즈는 300mm이다. “팔다리가 길어서 옷을 살 땐 사이즈만 보면 안 되고 꼭 입어봐야 해요. 유니클로는 사이즈가 다양하게 있고, 같은 제품을 반복해서 살 수 있으니까 저 같은 사람에게 참 편하죠.” 4XL 램스울 노랑 스웨터를 입은 선철씨가 빨간 가디건에 청바지를 입으신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다며 웃는데, 아버지는 오히려 여유로우신 모습이다. “원래 핑크색을 즐겨 입습니다. 아들은 순천에서 운동을 하지만 저는 산에 살거든요. 산에서는 원색을 더 입게 되잖아요. 이런 색깔로 아들과 맞춰 입으니 옛날로 돌아간 것 같고 기분이 새롭네요.” 쉬지 않고 달려온 계절은 이제 울긋불긋 단풍의 차례, 다리 위 다정한 부자의 노랗고 빨간 램스울 스웨터가 꼭 물드는 단풍 같다.

후리스를 입고 춘천의 아침을 달리는 두 선수

소속팀도 같고, 쓰는 방도 같은 두 사람은 기계체조 선수다. “중학생 때부터 늘 시합장에서 마주치니까 서로 알고 지낸 건 오래 됐어요. 같은 팀은 대학 때부터.” 십대 소년처럼 앳된 모습이지만 엄연한 실업팀 선수인 김형만 씨는 올해 전국체전 도마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도마는 자신이 있죠.” 점수는 14.088,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이름을 알린 동료 선수들을 이긴 기쁨도 있지만 아쉬움도 늘 함께다. “철봉에서는 떨어졌어요. 체조는 모든 종목을 골고루 잘해야 국가대표가 될 수 있어요.” 형만 씨는 인스타그램에 연습하는 영상을 가끔 올리는데, 주로 떨어지거나 넘어지거나 고꾸라지는 장면이 많다. “형만이 형은 정말 연습을 열심히 해요. 요즘 허리가 안 좋아서 걱정입니다.” 형을 걱정하는 후배 백민 씨도 도마를 주 종목으로 한다. “중학교 때는 한 대회에서 7관왕을 해본 적도 있어요.” 얼마 전 두 선수가 한 팀으로 참가한 국제대회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메달이 열매라면 연습은 뿌리. 언제나 그렇듯 아침 달리기가 시작이다. “춘천은 공기가 좋아요.” 공지천 구름다리를 달리는 두 사람 너머로 알싸한 다음 계절의 냄새가 몰려온다. “누구보다 먼저 유니클로 후리스를 꺼내 입었어요. 운동할 때는 일부러 히트텍을 입고 땀을 흘리기도 하고요.”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리 들릴 테니, 운동 선수의 땀을 흘린다는 말에 새삼 진심이란 이런 것인가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