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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계절,
레이온 블라우스의 날들
레이온 블라우스를 보면 이런 문장이 떠오른다.
“한 번도 안 입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입은 사람은 없다!”
글/ 오선희 (독립출판사 <포엣츠 앤 펑크스> 발행인)
어느 늦봄, 아름다운 야외 결혼식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평소 캐주얼하고 매니시한 룩을 선호하는 나이지만, 결혼식만큼은 어느 정도
‘로맨틱한’ 요소를 더하려고 노력한다. 그럴 때 심플한 블라우스 한 벌은 아주 좋은 선택이 된다. 블라우스라는 아이템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 로맨틱하고 페미닌한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데다가, 포멀한 옷(테일러드 재킷, 앵클 팬츠, 펜슬 스커트
등)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따라 왠지 면 셔츠는 좀 캐주얼하거나 식상하게 느껴졌고,
실크 블라우스는 어쩐지 부담스러웠다. 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운 봄 날씨였기
때문일까? 평소처럼 실크 블라우스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때 레이온 소재의
블라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면 셔츠의 상쾌함과 실크 블라우스의 드레시한 느낌이 그 한 벌의 레이온 블라우스에 공존해 있었다.

포멀한 테일러드 팬츠에 레이온 블라우스의 단추를 두 개 정도 풀고, 소매를 살짝
접은 후 유니크한 목걸이와 뱅글을 착용하고 나니 결혼식에 어울리는 ‘적절한’
아웃핏이 완성되었다. 나는 무엇보다 레이온 블라우스가 살갗에 닿는 느낌을
좋아한다. 그건 마치 깨끗하게 세탁한 후 햇볕에 바삭바삭하게 말린 침대 커버 같다. 그 속으로 쏙 들어갔을 때의 기분! 레이온 셔츠를 입는 날은 하루 종일 이 쾌적하고 안락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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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이 잦았던 기자 시절, 레이온 블라우스는 가장 먼저 챙긴 아이템이었다.
나의 트렁크 속은 다양한 컬러와 디자인의 레이온 셔츠로 빼곡했다.
특히 이 나라 저 나라 옮겨 다니며 2~3일에 한 번씩 짐을 싸고 풀어야 할 때,
구김이 덜한 레이온 블라우스의 유용함과 편리함은 더욱 빛을 발했다.

언젠가의 파리 컬렉션에서는 제대로 차려입고 참석해야 하는 패션쇼, 패션쇼
중간중간 잡힌 인터뷰, 그리고 꽤 포멀한 저녁 식사까지 이 레이온 블라우스
한 벌로 버틴 적도 있었다. 주얼리와 슈즈만 살짝 바꿔주면 전혀 다른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 유럽 출장은 늘 기온 차가 심했는데, 레이온 블라우스는 스타일리시한
레이어링이 가능한 아이템이었다. 더운 실내에선 레이온 소재 특유의 ‘차르르한’
시원함으로 무더위를 식혀주었고, 갑자기 추워질 땐 니트와 점퍼, 재킷 등과
다양하게 스타일링하기 좋았다. 실크처럼 조심스레 관리하지 않아도 되니 부담이
없었다. 이렇듯 비교적 구김이 덜하고 세탁이 용이한 데다가 어느 옷들과도 무리
없이 매치되었으니, 레이온 블라우스는 나의 최고의 ‘출장 룩’으로 기억된다.
What is Rayon?
레이온은 특유의 편리함과 실용성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패브릭 중
하나다. 레이온은 ‘인조 견직물’을 지칭하는 소재로 비단이나 실크와 비슷한 촉감을
자랑하며 정전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인조 섬유이긴 하지만 목재
펄프의 섬유소를 재생시켜 만든 ‘재생 섬유’의 한 종류이다.

과거 유럽에서는 동양 실크를 진귀한 고급 사치품으로 생각했다. 이 고급 실크를
동경했던 유럽인들은 이것을 대신할 수 있는 ‘보급형 인조 실크’를 떠올렸고,
프랑스인에 의해 ‘레이온’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04년 영국 코탈드스
섬유회사에 의해 대중화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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