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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입어보고,
이렇게 감탄하게 됐다.
내게 팬츠는 감탄 팬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조금 과장이긴 하다.
하지만 확실히 팬츠를 선택하는 기준에 영향을 주었다. 과거에 팬츠
잘 만들기로 소문난 뿌리 깊은 브랜드만을 고집했는데, 그 집착을
무너뜨리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글/ 성범수 (매거진<인디드>편집장)
GAMTAN
PANTS
감탄 팬츠를 경험한 후, 핏과 편안함을 다 잡아낸 팬츠들이 시장에서 많이 보인다.
나뿐 아니라 팬츠를 만드는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 부정할 수 없겠다.
팬츠가 불편해도 입곤 했다. 감춰야 하는 부분이 많은 몸이라 불편하더라도 핏이
좋다면, 감내하는 편이었다. 근데 꼭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어느 시점에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 후로 팬츠를 선택하는 기준이
달라졌다. 사울 레이터라는 사진작가의 전시에 다녀왔다. 취재를 위해서였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였기에 직접 보고 싶었다. 사울 레이터는 사진 역사의
다방면에서 긍정적 영향을 끼쳤지만, 그중에서도 컬러 사진의 선구자란 칭호가
익숙하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이 주목받기 전에는 컬러 사진의 가치가 흑백 사진에
비해 인정받지 못했다. 특별한 존재와 사건은 기준이 되어 그전과 이후로 대변화를
일궈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일은 역사적인 사건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크고 작은 부분에서도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몇 년 전, 감탄 팬츠란 낯선 이름을 알게 됐다. 웃음이 살포시 머금어지는 광고를
접했지만, 입고 싶진 않았다. 팬츠가 착용감이 좋고, 가벼우며, 신축성이 대단하고,
건조력이 뛰어나기만 하면 대수인 건가?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할 때였다.
팬츠에 일가견이 있는 브랜드가 켜켜이 쌓아온 노하우가 담겨 있어야 하고, 팬츠가
지녀야 하는 본연의 디테일들이 빠짐없이 적용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팬츠는 꽤
만족스런 핏을 완성해냈다. 하지만 내 거대한 몸 때문이었을까? 편안함은 좀
부족했다. 그래도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참고 이겨내면 원하는 핏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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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그리고 감탄팬츠
골프를 좋아한다. 시간과 금전적 여유만 허락된다면, 골프장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내고
싶다. 골프 옷은 일상복과는 좀 다르다. 일상복을 입기도 하지만, 대부분 알려진 골프
브랜드의 옷을 입고, 필드를 누빈다. 그러던 중, 지인이 슬랙스를 입고 골프장에
나타났다. 핏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골프를 칠 때도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궁금했다. 어느 브랜드 제품이냐고 물었다. 그는 유니클로의 감탄 팬츠라고 했다.
너무 편해서 골프 칠 때도 일상에서도 매우 만족스럽다고 했다. 드디어 감탄 팬츠에 대한
관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골프를 치며, 지인이 팬츠에 대해 더 깊은 설명을
들려줬다. 프로골퍼 애덤 스콧의 요청으로 감탄 팬츠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애덤 스콧은 타이거 우즈를 끌어내리고 세계 1위에 등극한 적이 있는 선수다.
골프 기술의 발전은 타이거 우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한다. 그런 위대한 타이거
우즈를 끌어내리고 세계 1위에 등극한 선수의 생각을 담아 완성된 팬츠라면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때부터 감탄 팬츠를 입기 시작했다. 감탄 팬츠는 무엇보다도 편안하다. 여기서
편안함이란 움직임의 자유로움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어떤 스타일을 연출하든 잘
어울리는, 스타일링의 편안함을 말하는 것이다. 맞다. 감탄 팬츠의 진정한 가치는
일상에서 증명된다. 울 라이크 소재를 적용한 제품은 재킷과 함께 셋업으로 입을 수
있어, 비즈니스 웨어 역할을 해낸다. 코튼 라이크 소재 팬츠는 면 티셔츠나 옥스퍼드
셔츠 그리고 블루종과 함께 데일리 캐주얼 룩 연출은 물론, 네이비 블레이저와도
좋은 짝을 이뤄 프레피 룩 연출에 활용되기도 한다.

감탄 팬츠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장점 많은 팬츠다. 아직 감탄
팬츠를 착용한 적이 없다면, 과거의 나와 같은 특별한 경험을 할 기회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 감탄할 기회가 남아 있다니, 그게 괜스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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