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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건, 청신(淸新)한
초여름의 옷
이 계절에 가장 필요한 옷은 얇고 가벼운 카디건이 아닐까.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단편 에세이 같은 옷, 카디건에 관하여.

글/ 오선희(출판사 <포엣츠 앤 펑크스> 발행인)
옷장 속 머스트 해브 아이템
나는 ‘카디건 컬렉터’라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소재와 컬러, 길이,
브랜드의 카디건을 소장하고 있다. 패션 학도 시절, 캐주얼한
데님에 화이트 탱크톱을 입고 카디건을 머플러처럼 걸치거나,
커다란 캔버스 백 안에 캐시미어 카디건과 생수병을 넣고 다니는
잡지 속 해외 셀러브리티의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럽고 근사해
보이던지! 록 음악에 푹 빠졌던 록 키즈 시절엔, 밴드 너바나의
뮤지션 커트 코베인의 카디건 스타일링이 가장 스타일리시해
보이기도 했다. 목 주위가 늘어진 티셔츠에 낡은 데님 팬츠를 입고
화려한 패턴의 앙고라 카디건을 걸친 그의 패션은 강산이 몇 번
흐른 지금 봐도 여전히 쿨하다. 그의 아이코닉한 분위기에 카디건
패션이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그들은 ‘카디건은 그저 귀엽고
부드러운 옷’이라는 편견을 깨주었다. 그때부터 카디건을 향한 나의
집착(?)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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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건만큼 다양한 얼굴을 가진 패션 아이템도 드물다. 옷장 속에 다양한
스타일의 카디건을 몇 벌 구비하고 있다면 옷 입기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재킷보다는 부드럽고 스웨터보다는 포멀한 카디건은 그 어떤 스타일과 상황,
계절, 체형에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울 재킷 안으로 살짝 보이는 카디건은
댄디한 멋을 풍기고, 섹시한 실크 원피스 위에 무심한 듯 걸친 짧은 카디건은
로맨틱하고 사랑스럽다. 또 평범한 데님 팬츠와 빈티지 티셔츠 위에 매치한 롱
카디건은 현대적인 록 스타일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다. 이렇듯 카디건은
밋밋한 아웃핏에 악센트와 재미를 주고, 다양한 무드로 순간이동을 가능케
하는 스마트한 패션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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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건과 날씨
카디건의 유용함은 비단 스타일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날씨가 변덕스러운 영국에 살면서 나는 더욱 이 옷을 사랑하게
되었다. 카디건이야말로 사계절 내내 쓰임이 좋은 유일한 패션
아이템이 아닐까? 아마 영국인들이 가장 즐겨 입는 패션 아이템도
두툼한 울 스웨터와 카디건일 것이다. 포근한 캐시미어 카디건은
레이어드 룩부터 머플러 역할까지 소화해내고, 울 카디건은
초봄이나 초가을 시즌, 가벼운 코트나 재킷처럼 입을 수 있다. 얇은
면이나 합성 소재의 카디건 또한 옷 입기가 애매한 환절기나 에어컨
바람이 심해지는 한여름, 늘 가방 속에 챙겨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우아한 스포츠 패션으로서의 카디건
한편 카디건은 스포츠 룩을 더욱 스타일리시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최근
테니스를 치기 시작하면서 카디건을 곁들인 테니스 룩에 푹 빠져 있는데,
시대와 나라별로 카디건을 매치한 테니스 패션은 무척 흥미롭다. 카디건을
활용한 이 테니스 스타일은 일상에서도 충분히 응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재즈시대 플래퍼 룩의 여자들처럼 H라인 롱 원피스에 카디건을 입거나,
로저 페데레 선수처럼 화이트 셔츠에 흰 카디건을 매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

나는 아직 테니스 초보지만, 마음만큼은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시모나
할레프다. 주름치마에 피케셔츠를 입은 후 흰 카디건을 걸치고 코트로
나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전통적인 스포츠인 크리켓을 즐기는
영국 사람이나 골프를 치는 친구들도 필드에서 가장 즐겨 입는 아우터로
‘카디건’을 꼽는 것을 보면, 카디건이 우아한 아웃도어 스포츠 룩에도 잘
어울리는 패션 아이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이번 시즌 메가 트렌드로 떠오른 로 라이즈(Low Rise) 주름치마와
함께 카디건을 매치한 스타일을 시도해볼 생각이다.(주름치마야말로
카디건과 훌륭한 매치를 보여주는 아이템.) 테니스 룩의 우아하고 스포티한
멋에 유니폼의 단정함을 더한 스타일! 이것이 카디건을 즐길 수 있는 가장
트렌디하고도 클래식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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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건의 역사
카디건은 1890년대 초, 영국의 군인인 7대 카디건 백작 제임스 브루데넬이 제일
먼저 입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세련된 멋쟁이로 유명했던 백작 덕분에 카디건은
크게 유행했고, 상업적으로 생산되기 이르렀다고 한다. 그 후 1920년경,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 코코 샤넬에 의해 여성용 카디건이 개발되었고 이는 최초의 여성용
카디건으로 기록되었다.
James Brudenell
사진 제공/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