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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LE
젊은 작가들의 흥미로운 2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세 곳
글/ 안동선 (프리랜스 에디터)
MZ세대의 작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2인전을 선보이고 있는 흥미로운 우연. 따로 또 같이,
두 작가의 작품 세계가 교차하고 중첩되는 풍경이 흥미롭다.
투투 Two
회화작가 성시경과 조각작가 현남의 2인전은 전시 제목부터 《투투 Two
다. 경리단길 꼭대기쯤에 있는 P21과 10여 분 걸어 내려간 곳에 위치한
휘슬, 두 갤러리는 공동으로 기획하여 이번 전시를 선보였다. 전시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두 명의 작가가 두 곳의 공간에서 서로의 작업에 나타나는
빈 곳을 투과()하며 새로운 맥락을 도출해보고자 하는 시도로
기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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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이 눈여겨봐야 하는 건 여백이자 구멍이다. “작업실을 함께 쓰면서 성시경 작가의 그림에 하얗게 남은 여백이 매우 흥미롭다는 생각을 했어요.” 현남 작가는
구멍이 송송 뚫린 거대한 멍게 모양의 오렌지색 조각 앞에서 말했다. 그는 폴리스타이렌 같은 산업 재료에 굴을 파듯 다양한 도구로 구멍을 뚫고 그곳으로 에폭시를 흘려 넣어 굳힌 뒤
여러 재료가 뒤엉키고 녹아 내리고 깨지거나 부풀어 오르는 현상을 활용해 풍경의 파편을 구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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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선보이는 현남 작가의 <공축> 시리즈가 녹아 내린 재료 사이의 빈틈, 보이드(비어 있는 공간)에 대한 연구라면 제 그림에서는 아무런 붓 자국이 없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조형
과정에 개입하게 됩니다.” 성시경 작가는 짧게 스쳐간 형상이나 생각을 추상적으로 그리며, 캔버스의 사각 프레임이 내부의 조형과 맺는 상호 관계를 회화의 조건으로 삼아왔다.
“기본적으로 제 그림에는 건드리지 않은 영역이 많아요. 사각의 캔버스를 결정된 이미지로 향하는 것이 아닌 미정된 공간으로 보고 작업을 이어나가요.” 성시경과 현남은 회화와
조각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지만 보편적인 칠하기 기법을 뒤집거나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반전시킨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창작의 과정을 상상하며 골똘히 바라보게
하는 작품들이다.

4월 30일까지.
P21
이미지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 74
휘슬
이미지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13길 12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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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her
신생 갤러리 실린더에서는 《Feather》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설치작가 우한나와 회화작가 정수정이 지난 5년 동안 작업실을 함께 쓰면서 서로의 판타지적 서사를 공유하는
접점에서 함께 엮은 이야기가 주제다. “두 작가는 평소 공통의 관심사인 신화와 전설 속 거인과 용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했다고 해요. 그 이야기 속에서 두 사람이 상상한 거인은 거대한
크기와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인간에게 경외감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다름 때문에 소외되는 존재이고, 용 역시 인간을 지켜주면서도 결국 인간에게 해침을 당하는 쓸쓸한 생명체였다고
해요. 그런 얘기를 회화와 설치로 풀어보았습니다.” 실린더 갤러리의 노두용 디렉터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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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중앙의 등을 맞댄 두 개의 캔버스에는 두 작가가 각각 상정한 이번 전시의 화자인 거인이 그려져 있다. 그 양쪽으로 세부적인 이야기의 단서가 될 만한 정수정의 회화 작업과
용의 신체를 표현한 우한나의 패브릭 작업들이 점점이 공간을 점유한다. 다양한 시각적 매체로부터 받은 영감을 회화로 옮길 때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특히 주목하는 정수정 작가의
거인은 중간자적 존재로 보인다. “제가 사랑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거신병이란 존재가 있어요. 전쟁으로 첨단 문명이 멸망하기 전 인류가 만들어낸 거대한
인간형 반생물 병기인데요, 거기에 착안해서 여성 거인을 그려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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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초입에는 천장에서 바닥까지 천으로 연결된 불그죽죽한 설치물이 매달려 있다. “케밥집에 가면 회전하는 고기 로스터가 있잖아요, 그 형태에서 착안해 도륙된 용의 신체를
구현했어요.” 패브릭을 주재료로 다양한 설치작업을 이어온 우한나 작가가 말했다. 화려한 나비 형상의 작품은 용이 뱉고 간 물질, 두 개의 원형 물체가 달린 주홍빛 조각은 용의 눈.
심장, 대장, 콩팥 등 신체 장기를 패브릭으로 형상화했던 우한나 작가의 이전 작품들이 떠올랐다. 봉천동 주택가 한복판에 위치한 갤러리에서 아득한 시공간을 가로질러 거인과 용이
사는 나라로 떠나는 정신의 여행!

4월 24일까지.
실린더
이미지서울 관악구 양녕로1길 48
The Seasons
이머징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데 충실해온
디스위켄드룸에서는 회화작가 정이지, 조효리의 2인전 《The
Seasons》가 열리고 있다. 두 작가는 사뭇 다른 제작 방식으로
작업하지만 형상이 흐릿한 대상을 모양을 가진 도상으로
치환해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정이지가 시간의
단위와 방향성을 분절된 이미지들의 연쇄로 번안한다면,
조효리는 현실에서 마주쳤을 장면이나 사건을 회화의 가상적
차원으로 옮겨냅니다.” 박지형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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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지, , 2022, oil on canvas, 200x230cm
정이지, , 2022, oil on canvas, 97.8x104.4cm
정이지, , 2022, oil on canvas, 130.3x80.3cm
푸른빛이 물러간 자리에 붉고 노란 얼룩이 천천히 뒤덮이는 수평선,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다 잠시 멍 때리는 친구의 얼굴, 화병에 담긴 보랏빛 꽃이 서서히 고개를 떨구는 시간 등
일상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이 정이지의 그림 안에서는 멈추어 선다. 마치 별것 아니지만 자신에겐 유독 소중한 일상의 순간을 SNS 피드에 박제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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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리, , 2022, Arcylic, oil. color pencil, paper on canvas, 225x162cm
조효리, , 2022, Arcylic, oil. color pencil, paper on canvas, 198.8x130.3cm
조효리, , 2022, Arcylic, oil on canvas, 116.8x91cm
조효리는 3D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가상공간에서 풍경을 만들고 그 공간을 캔버스에 옮기는데 이때 캔버스의 물성을 실험하며 평면에서 입체로 차원을 증폭시킨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혼성적인 이미지 환경의 감각적 요소를 재해석한 듯하다.

이번 전시는 서로의 작업 세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두 작가가 중요한 문장을 전달하거나 회화작업의 기초가 될 이미지를 전하는 등 창조적 핑퐁을 통해 만들어졌다. 전시 제목
‘The Seasons’는 어떤 의미를 담은 것일까? “두 작가가 다루어온 무형의 개념인 우정, 상실, 만남, 관계, 치유 등을 상징하는 대용물이자 관객을 주관적 서사로 이끄는 입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지었어요.” 전시의 시작점에는 조효리 작가의 타원형 캔버스 작업이 걸려 있다. 파장이 일고 있는 물에 양각으로 너바나의 ‘Come As You Are’의 첫 구절
가사가 적혀 있다. 어떠한 편견도 없이 그저 보이는 대로 느끼길 바라는 작가의 주문이기도 할 것이다.

4월 24일까지.
디스위켄드룸
이미지서울 용산구 한남대로42길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