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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UMMER HOLIDAY
WITH A DRESS
마치 무채색 캔버스처럼, 무엇을 더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스타일로 변모하는
티 드레스. 아름다운 여름 휴양지와 티 드레스에 관한 기억들.

글/ 오선희 (독립출판사 포엣츠 앤 펑크스 발행인)
티 드레스를 보면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텅 빈 캔버스가 떠오른다.
어떤 컬러로 채색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리는 캔버스처럼, 티 드레스 역시 그렇다.
어떤 아이템과 매치하느냐에 따라 전혀 색다른 이미지가 연출되니 말이다.
사실 나는 사계절 내내 입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티 드레스를 좋아한다.
티 드레스 한 벌이면 적어도 10가지가 넘는 스타일링이 머릿속에 그려지니까.
블랙 컬러의 티 드레스를 예로 들어보자.
블랙 티 드레스에 데님 재킷을 입고 스니커즈를 신으면 쿨한 캐주얼 룩이 완성된다.
반면 블랙 티 드레스에 블랙 재킷을 입고 슬링백 슈즈를 신으면 근사한 이브닝 룩으로 순간이동이 가능하다.
한겨울엔 니트와 레깅스, 퍼 코트, 부츠 등을 레이어링해 매치하면 1990년대풍 그런지 룩이 연출되기도 한다.
게다가 살이 쪘을 땐 티 드레스만큼 ‘잘 가려주는 아이템’도 드물기에 자주 손이 갈 수밖에 없다.
The Memory of Normandy
티 드레스의 역할은 특히 여름 휴양지에서 무궁무진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트렁크 속에 제일 먼저 챙기게 되는 아이템이다. 그러나 몇 년 전, 노르망디로 떠난
출장길에서 나는 티 드레스를 빠뜨렸다는 걸 깨달았다! 더구나 날씨는 갑자기 더워져
준비해간 옷들이 전부 무겁고 지나치게 진지해 보였다. 로맨틱한 프랑스 해안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랄까? 심지어 클라이언트들과 해안가 식당에서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입어야 할 옷이 마땅치 않았다. 포멀한 디너는 아니었지만 레깅스나 데님을
입고 나갈 순 없었다. 나는 급한 대로 우선 노르망디 로컬 숍에서 보들보들한 면
소재의 크림색 티 드레스를 샀다. 여기에 마린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어깨에 걸치고
진주 귀고리와 목걸이를 착용했다. 한 손에 작은 실크 미니 백을 들고 나니 비로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프랑수아즈 사강 소설 속
여주인공(여름이면 항상 남프랑스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내는)이 된 것 같기도 했고.
식사 자리는 즐거웠다. 엄청난 양의 포도주와 해산물을 먹어치웠음에도 불구하고, 티
드레스 때문인지 무척 편안한(?) 상태로 호텔로 귀가했던 기억이 난다. 사강 소설 속
여주인공 같은 ‘스타일’ 역시 잃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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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Summer
오죽하면 ‘잉글리시 서머’라는 이름의 칵테일이 있을까? 그만큼 영국의 여름은
아름답다. 특히 영국 중남부의 아름다운 전원 지역인 코츠월즈(Cotswolds)는
잉글리시 서머의 절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 사는 친구 덕분에 나는
운 좋게도 지난 몇 해의 여름을 코츠월드에서 보낼 수 있었다. 제아무리 여름이라도
영국의 여름은 기온 차가 큰 편이라 항상 왁스드 재킷이나 울 니트 같은 것을 챙겨야
한다. 이때도 티 드레스는 유용하다. 왁스드 재킷 안에 티 드레스를 입고 부츠를
신거나 니트 카디건과 매치하면 영국 시골의 사랑스러운 팜 걸(Farm Girl) 같은
느낌을 연출 할 수 있으니까. 맨 다리에 샌들만 신어도, 레깅스를 입어도,
심지어 데님 팬츠 위에 걸쳐도 티 드레스는 늘 제 몫을 해낸다.
A Life of City Girl
해안가나 한적한 전원마을에서 보내는 여름도 좋지만, 나는 타고난 시티 걸(City Girl)이다.
해변에서 선탠을 하며 유유자적 보내는 시간도 좋지만, 도시를 탐험하고 무언가 새로운 정보와 장소를
발견하는 시간들이 더 흥미롭다. 그런 의미에서 도쿄는 나에게 최고의 도시 중 하나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면서 새로운 숍을 둘러보고, 미식을 즐기고, 최신 문화 공간들을 찾을 수 있는 도시!
도쿄의 여름은 가혹할 정도로 덥지만, 컬러별로 준비해간 슬리브리스 티 드레스와 함께라면 괜찮았다.
그 무시무시하게 습하고 뜨거운 여름 도쿄에서의 여행조차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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