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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데이터의 세계
현대 문명의 중심이 된 디지털 기술의 양면성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전시가 열린다.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들의 작품은 아름다우면서도 음험하다.

글/ 안동선 (프리랜스 에디터)
세계건설, 2022 (리움미술관 전시 전경 202, 사진 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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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사회의 이면을 추적하고 비판하는 영상작품을 만들어온 히토 슈타이얼은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히토 슈타이얼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이자, 그의 초기 작품부터
2022년 최신작까지 총 23개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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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 Yeah We Fuck Die, 2016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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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 .MOV 파일, 2013, 소셜심, 2020,
자유낙하, 2010, 태양의 공장, 2015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전경 2022)
‘데이터의 바다’라는 제목에서 추측할 수 있듯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디지털과 데이터이다. 히토 슈타이얼은
‘데이터의 바다/ 안 보여주기-디지털 시각성/ 기술, 전쟁,그리고 미술관/ 유동성 주식회사-글로벌 유동성/ 기록과
픽션’이라는 5개의 주제 아래 구성한 작품들을 통해 관람객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각종 재난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디지털 시각 체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커미션 신작인 <야성적 충동>(2022)이다. 총 4개의 채널로 구성된 비디오 작품인
<야성적 충동>은 본래 스페인에 있는 작은 산골마을 양치기들과 그들의 삶을 담으려던 계획을 접고 동물 전투 메타버스를
제작하려는 리얼리티 TV 쇼 제작자 간의 대립을 중심으로 한다. 그리고 여기에 블록체인, 대체불가능토큰(NFT) 등의
이미지를 중첩하며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디지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추적한다. 작품이
어렵지 않을까 겁먹을 필요 없다. 이번 전시의 기자간담회에서 히토 슈타이얼은 말했다. “시각예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힘은 그 누구도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9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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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 슈타이얼
야성적 충동,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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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에서는 인공지능과 게임 엔진을 사용해 가상 생태계를 만드는 작업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온 이안 쳉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대표작과 신작을 망라하는데, 이들 작품들은 관람객의 참여와 활동에 따라 유기적인
생물처럼 반응하며 작가가 천착해온 주제인 ‘인간 의식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
관객을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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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건설, 2022 (리움미술관 전시 전경 2022, 사진 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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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사절 완벽을 향해 분기하다, 2015-2016, 사절 완벽을 향해 분기하다, 2015-2016, 사전 신들의 품안에 거하다, 2015, 사절 스스로를 일몰시키다, 2015
국제 미술계에 이안 쳉의 이름을 알린 대표작인 <사절(Emissaries)> 3부작(2015-2017)은 작가의 말처럼
“영원히 플레이되는 비디오게임” 같다. 가상 생태계의 등장인물인 ‘사절’은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채 자연환경과 교류하고
반응하며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나간다. 관람객들은 ‘사절’의 선택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작품 진행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뱀의 형상을 한 인공 생명체인 <BOB(Bag of Beliefs)>은 좀 더 관객 참여적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신념이 담긴 가방’이라는
뜻의 제목을 붙였는데 이는 수많은 신념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의식을 가리킨다. 뱀처럼 생긴 ‘밥(BOB)’도 다양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어떤 신념이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행동이 바뀐다. 관객들은 작품과 연결된 앱에 접속하여 밥에게 특정
신념을 심어줄 수 있고, 밥은 주어진 신념에 맞는 의식 세계를 선보인다. 작품에 참여하며 “살아 있는 것은 예측 불가능하고,
거기서 파생되는 복잡성은 흥미롭다”는 작가의 말을 곱씹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Life After BOB: The Chalice Study)>(2021)도 선을 보인다.
리움미술관과 더 셰드(The Shed, 뉴욕), 루마 재단(LUMA Foundation) 및 라이트 아트 스페이스(LAS, 베를린)가 제작을
지원한 50여 분 길이의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극장처럼 마련된 블랙박스에서 상영되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인공지능과
인간이 결합한 미래의 모습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를 SF적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인간은 수많은 선택에 의해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뇌에 이식된 인공지능에 의한 선택이 ‘나’를 구성할 때, 그때의 ‘나’는 온전히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쩌면 현실이 될지 모르는 미래를 미리 체험할 수 있는 의미심장한 감상이 될 것이다.

리움미술관에서 7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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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쳉, (사진 Kim Je- Won)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