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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as Gursky>> 포스터, <무제 XIX Ohne Titel XIX>, 2015,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시크한 시선
글/ 안동선 (프리랜스 에디터)
냉철한 시선과 실험 정신으로 사진의 미학적 가능성을 확대해 온 현대 사진의 거장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전이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독일 출신의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공장, 아파트, 산과 같은 거대 공간 속
인간의 모습을 담은 압도적인 크기의 사진을 통해 우리의 일상적 순간이 미학적이고 경제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면모를 갖고 있음을 증명해 왔다. 유명 사진 비평가 제프 다이어는 이를 두고 “우리는 거스키의 세상에서 걷거나
운전하는 우리 자신을 일상적으로 발견한다.”라고 썼다. 국내 최초로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 작품 총 40여 점을 ‘조작된 이미지’, ‘미술사 참조’, ‘숭고한 열망’이라는 주제로 엮어 소개한다.
8월 1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의 대표작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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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경>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사진: studio_kdkkdk
<아마존 Amazon>, 2016,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아마존 Amazon
현대 사회의 핵심적 측면은 ‘내가 쓰는 물건이 곧 나 자신’이라는 소비 중심의 사회라는 것이다. 작가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한 아마존 물류센터의 선반을 가득 메우고 있는 다양한 상품들을 사진에 담았다.
상품들은 마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두 팔을 번쩍 들고 열광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군중의 모습을 닮았다.
그러나 이 ‘숭고한 열망’의 아이러니한 점은 그렇게 하면 할수록 서로 점점 더 닮아가는 상황으로 빠져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는 차별화를 내세우지만 실은 똑같은 욕망을 찍어내는 중임을 냉소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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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Chicago Board of Trade III>, 2009,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인간의 ‘숭고한 열망’이라 부를 만한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인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는 뉴욕, 홍콩, 일본, 중동
등의 거래소를 연작으로 찍은 시리즈 중 하나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래를 한 장면으로
축약시켜 놓은 듯, 사진 속 다양한 인물들은 원근법을 무시한 채 얽히고설킨 자본주의의 복잡한 관계망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분출하는 ‘숭고한 열망’은 ‘이익'이라는 하나의 소실점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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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 Ⅳ>, 2014, 사진: 안동선
SH Ⅳ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배트맨과 아이언맨 등 슈퍼히어로를 작품에 담아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연작을 만들어
왔다.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인 <SH Ⅳ>의 등장인물은 스파이더맨과 그 역할을 맡은 배우인 토비 맥과이어이다.
도쿄의 메종 에르메스 빌딩 안에 있는 토비 맥과이어와 빌딩 밖의 스파이더맨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너는 누구냐?” 한편,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누가 진짜 (작품의) 주인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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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hmbruck I>, 2013, 사진: 안동선
Lehmbruck I
이 작품은 독일 뒤스부르크에 있는 렘부르크 미술관 전시실을 찍은 것이지만 이 공간에서 배치된 작품들은 진짜가
아니다. 독일의 대표적인 조각가인 카타리나 프리츠, ‘신 라이프치히 학파'의 기수 네오 라우흐,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오가는 작품으로 안드레아스 거스키가 오마주 하기도 한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 등을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전시실의 빈 공간에 각각 배치했다. 이런 현실과 가상의 조합은 ‘작품 속 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낸다.
<크루즈 Kreuzfahrt>, 2020,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크루즈 Kreuzfahrt
여객선 ‘노르웨이 블리스’를 여러 차례에 걸쳐 촬영한 사진을 디지털 방식으로 편집한 이 작품은 촬영 대상의 특징을
극대화하는 안드레아스 거스키 작품의 대표적인 면을 잘 보여준다. 배는 수직-수평 구도를 끝까지 유지하는 구조적
형식 아래 배 선실 안의 작은 사람의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는 극사실주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작가는 사진이
가공된 것임을 드러내기 위해 이 배를 원래 이름이 아닌 ‘노르웨디 랩소디'라 명명했다. 다채로운 색상의 정사각형
큐브를 조합한 작품인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컬러차트>의 영향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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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위를 걷는 사람 Eislaufer>, 2021,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얼음 위를 걷는 사람 Eislaufer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소개되는 신작 <얼음 위를 걷는 사람>은 뒤셀도르프 라인강변에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코로나19가 기세를 떨치던 시절이라 사람들이 거리두기를 통해 띄엄띄엄 서 있는 모습이 의도치 않게
패턴을 만들어내며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작품 속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16세기 플랑드르 화가를
대표하는 피터 브뢰횔의 <눈 속의 사냥꾼>의 구도와 세밀한 디테일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Andreas Gursky
안드레아스 거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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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 Alexander Romey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현대미술 특별전
2022.3.31 - 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