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스위스로 떠났다. 무더운 날임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반바지를 챙기지 않았다. 이젠 쉽사리 넘어지던 유년의 내가 아니었지만, 잠옷 이외에 일상복으로 반바지를 입는 것엔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장 중 우연히, 작은 마을 한적한 공터에 클래식 자동차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클래식카를 소유하고, 그것을 유지하며, 동호회 활동과 같은 모임을 하는 것 자체도 굉장히 매력적이었지만, 그 차에서 내리는 그들의 모습이 내게 더 크게 다가왔다. 그들의 스타일은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충분히 멋있었기 때문. 그들 중 몇몇은 긴팔 셔츠를 입고, 얇은 니트를 어깨 위에 자연스럽게 걸치거나, 폴로셔츠와 함께 살짝 낙낙한 치노 반바지를 착용하고 있었다. 영화 <리플리>의 주드 로나 맷 데이먼이 떠올랐다고 하면 과대 포장이겠지만, 스타일은 어느 정도 유사했고, 멋스러움은 현실적으로 더 강렬했다. 나처럼 배가 나왔고, 다리도 매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왜 그게 더 멋있어 보였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들의 배경이 되어준 클래식 자동차의 후광효과 덕분이었을까? 어쨌든 난 클래식 자동차는 없지만, 저렇 게 옷을 입어야겠다고, 트라우마를 벗어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