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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이 계절을 위한 옷
기다리던 계절이 왔다. 치노 쇼트 팬츠는 여름을 위한 옷이다. 더구나 스타일링도
고민할 필요 없이 간단하다. 그러기에 나이 불문, 누구나 자신 있게 입어도 좋다.
글/ 성범수 (매거진 <인디드> 편집장)
균형의 문제였던 것 같다. 머리가 발보다 빨리 자랐다. 어릴 땐 머리도 큰데, 발은 작았다. 잘 넘어질 수밖에 없는 신체적 특징. 덕분에
무릎에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긴바지가 아닌 반바지를 입고 넘어지면 더 큰 상처가 남았다. 학교 운동장에서 반바지를 입고 넘어져
무릎에 흙과 피가 뒤범벅되었을 때, 양호 선생님이 내 상처를 무자비하게 씻었던 고통의 기억, 그 기억이 내가 반바지를 선호하지 않는
결정적 이유가 됐다. 그 트라우마와 함께 난 성인이 됐다. 아아, 한마디 하고 싶다. 양호 선생님을 오해하지 않는다. 흙으로 인해
감염되는 걸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였다는 것,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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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 스위스로 떠났다. 무더운 날임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반바지를 챙기지 않았다. 이젠 쉽사리 넘어지던 유년의 내가 아니었지만, 잠옷 이외에 일상복으로 반바지를 입는 것엔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장 중 우연히, 작은 마을 한적한 공터에 클래식 자동차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클래식카를 소유하고, 그것을 유지하며, 동호회 활동과 같은 모임을 하는 것 자체도 굉장히 매력적이었지만, 그 차에서 내리는 그들의 모습이 내게 더 크게 다가왔다. 그들의 스타일은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충분히 멋있었기 때문. 그들 중 몇몇은 긴팔 셔츠를 입고, 얇은 니트를 어깨 위에 자연스럽게 걸치거나, 폴로셔츠와 함께 살짝 낙낙한 치노 반바지를 착용하고 있었다. 영화 <리플리>의 주드 로나 맷 데이먼이 떠올랐다고 하면 과대 포장이겠지만, 스타일은 어느 정도 유사했고, 멋스러움은 현실적으로 더 강렬했다. 나처럼 배가 나왔고, 다리도 매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왜 그게 더 멋있어 보였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들의 배경이 되어준 클래식 자동차의 후광효과 덕분이었을까? 어쨌든 난 클래식 자동차는 없지만, 저렇 게 옷을 입어야겠다고, 트라우마를 벗어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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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치노 쇼트 팬츠와 긴팔 셔츠 또는 스웨트 셔츠를 입고, 넘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바깥세상으로 나가게 됐고, 그 스타일을 즐기기 시작하며, 더운 계절을 반갑게 맞이하게 됐다. 더위가 이미 시작됐지만,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엔, 아침저녁으로 살짝 한기가 있다. 하체는 추위를 잘 안 타는 터라, 치노 쇼트 팬츠 위에 상의만 긴팔로 입으면, 감기 없이 일교차가 큰 계절을 넘길 수 있었다. 완연한 여름이 찾아오면, 상의를 반팔로 바꿔주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치노 쇼트 팬츠를 즐길 수 있는 어른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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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바지도 긴바지처럼 입었을 때 분명히 차이가 존재한다. 난 무수히 많은 반바지 중 심플하고 무난한 정통적인 쇼트 팬츠 형태를 선호한다. 이런 생김새의 치노 쇼트 팬츠는 캐주얼과 클래식 스타일에 모두 잘 어울린다. 치노 쇼트 팬츠와 함께 티셔츠나 러거 폴로셔츠를 입어도, 셔츠와 함께 네이비 블레이저를 입어도 부적절하지 않은 조합을 완성해낸다. 프레피 스타일의 올바른 예를 완성해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경험한 유니클로의 치노 쇼트 팬츠는 반바지의 정통성을 완성도 있게 표현해내었다. 더구나 디테일한 부분도 신경 써, 모르는 이들은 눈치챌 수 없는, 차별된 내실을 담아내기까지 했다. 치노 쇼트 팬츠의 뒷주머니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이중 박음질을 적용했고, 허리 뒷부분의 흰 모서리, 인심 바느질 등의 전통적인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았다. 바느질 후 원단을 염색하는 가먼트다이 방식을 적용해 색 표현과 질감에 집중하며 빈티지한 감성을 담아내기도 했다. 그야말로 유니클로의 치노 쇼트 팬츠는 전통을 고집스럽게 고 수하며 완성해낸 반바지인 것.
유니클로의 치노 쇼트 팬츠를 제대로 잘 입기 위해선 옷장만 열면 된다.
당신이 소유한, 그 어떤 옷과도 오차 없이 어울릴 것이기 때문이다. 반바지를 입기 위해 상의를 사야 하는 수고스러움은 필요 없다.
스타일링에 자신 없어 매장 마네킹에 걸려 있는 착장 그대로 옷을 사는 우를 범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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