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T GRAND TOUR
아트 그랜드 투어를 떠나자!
팬데믹으로 연기되었던 미술계 주요 행사들이 지금 이 순간 유럽 여러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다.
글/ 안동선 (프리랜스 에디터)
18세기 유럽에서는 어린 귀족 자제들이 외국어와 외교술, 세련된 애티튜드와 좋은 취향을 익히기 위해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을 여행했고 이를 ‘그랜드 투어’라 불렀다. 오늘날의 박물관 단체 관광이나 와이너리 투어, 해외 유학과 어학연수가 다 몇 세기 전의 교육 여행에서 비롯된 것. 미술계에서는 이 그랜드 투어에 빗대어 유럽 여러 도시에서 2년 혹은 5년마다 열리는 중요한 아트 이벤트가 겹치는 때를 ‘아트 그랜드 투어’의 해로 불러왔다. 2017년에는 5년에 한 번 독일에서 열리는 카셀 도쿠멘타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2년에 한 번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매년 스위스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이 태양계 행성 직렬 현상처럼 줄줄이 개막해 전 세계 미술애호가들을 유럽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해 팬데믹으로 연기되었던 행사들이 의도치 않게 겹치면서 또 한 번 아트 그랜드 투어의 해를 맞이했다. 이 뜻밖의 이벤트에 주인공 격인 행사를 소개한다.
이미지
자르디니 공원에 있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메인 파빌리온, Photo by Francesco Galli,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국영 조선소를 개조한 아르세날레 전시관, Photo by Andrea Avezzu,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이미지
베니스 비엔날레 La Biennale di Venezia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번 아트 그랜드 투어의 가장 핵심적인 이벤트다. 1895년 당시 이탈리아 왕과 왕비의 결혼 25주년을 축하하고자 시작된 격년제 미술 행사는 오늘날 가장 유명하고 권위 있는 비엔날레로 자리매김했다. 2년마다 한 번 열리는 이 이벤트는 본래 2021년에 열렸어야 하는데 팬데믹으로 한 해 늦춰짐으로써 2022년을 아트 그랜드 투어의 해로 만들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은 ‘미술 올림픽’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국가관 전시 제도. 드넓은 자르디니 공원에 들어선 29개의 영구 국가관에서 각각 큐레이터와 작가를 선정해 전시를 열고 비엔날레가 개막한 후 한 국가관에 황금사자상을 주기 때문에 그야말로 올림픽과 비슷하다. 국가관 전시뿐 아니라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는 옛 조선소 자리를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한 아르세날레에서 열리는 본 전시와 산마르코 광장, 아카데미아 미술관 등 베니치아의 화려한 낭만성을 뿜어내는 공간에서 열리는 다채로운 전시들과 이를 기념하는 화려한 행사까지, 올 11월까지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눈 두는 곳마다 넘실거리는 바다처럼 예술이 가득하다. 그중 팔라초 그리마니 박물관의 게오르그 바젤리츠, 팔라초 두칼레의 안젤름 키퍼,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아니시 카푸어 등 지난봄부터 인스타그램을 수놓은 수려한 공간들에서 열리고 있는 거장들의 개인전은 놓치면 안 될 대표적 전시이다.

4월 23일부터 11월 27일까지.
이미지
“생과 사의 무한한 순환 속에서 세계와 물질은 끊임없이
소용돌이 친다”며 비물질과 물질적 현실을 포용하는 나선을 주제로 한
이번 한국관 전시의 제목은 <Gyre(나선)>
이미지
한국관 대표 작가로 김윤철이 크로마틱 키네틱 설치 작품 7점을 선보이는 한국관 전시 전경
황금 사자상을 받은 영국관의 메인 작가, 소니아 보이스(sonia boyce)의 설치 작품
이미지
현대미술계의 ‘머스트 해브’라고 할 수 있는 아트 바젤의 메인 전시장, Courtesy Art Basel
이미지
아트 바젤 Art Basel
미술에서도 쇼핑이 빠질 수 없다! 아트 바젤은 1970년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트 페어로 매년 6월 둘째 주 나흘 동안 개최된다. 이 시기 매우 작은 도시인 바젤은 전 세계에서 몰려온 미술 애호가와 아트 컬렉터로 붐비는데 호텔 방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그나마도 구할 수 없게 된 이들은 바젤과 인접한 프랑스나 독일의 도시에 숙소를 잡고 페어를 보기 위해 이른 아침 트램을 타고 행사장을 찾는다. 아트 바젤은 바젤 외에도 매년 홍콩(4월)과 마이애미(12월)에서도 열려 아시아, 유럽, 미주 대륙을 효율적으로 아우른다. 올해부터는 오는 10월에 ‘파리 플러스(Paris+)’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페어를 선보일 예정으로 벌써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아트 바젤은 그만큼 신뢰도, 충성도가 높은 아트 페어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아트 바젤은 이번 페어에 200개 이상의 글로벌 갤러리와 5개 대륙에서 온 4천 명 이상의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페어임에도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들의 최신작이 총출동하고, 미술관급 규모를 자랑하는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언리미티드’, 오늘날 미디어의 역할을 탐구하거나 필름 형식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필름’ 섹션 등 다채롭고도 깊이 있게 현재진행형의 동시대 미술을 소개하며 단순한 아트 마켓 이상의 역할을 자처한다. 더불어 도시 규모에 비해 많은 수에 속하는 37개의 뮤지엄에서는 이 시기에 맞춰 한해 가장 중요한 전시를 개막하기에 바젤을 찾은 이들은 나흘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미술을 위한 순간들을 보낼 수 있다. 올해의 아트 바젤은 끝났지만, 대부분 미술애호가는 연초부터 바젤에 가기 위해 항공권과 숙박을 예약하니 내년을 위해 스케줄을 살펴봐도 좋겠다.

6월 16일부터 19일까지.
이미지
바젤에 참가하는 주요 갤러리들이 대표작가 1명을 내세워 대규모 설치로 선보이는
언리미티드(Unlimited) 섹션 전경, Courtesy Art Basel
바젤 도심인 뮌스터플라츠 곳곳에 작품을 설치한 야외 전시 파크루(Parcours) 섹션 전경, Courtesy Art Basel
전 세계 주요 갤러리들이 참여하는 갤러리즈 섹션 전경, 스위스 작가
우고 론디노네의 조각 설치 작품을 선보인 글래드스톤 갤러리, Courtesy Art Basel
이미지
카셀 도큐멘타의 메인이벤트 홀 중 하나인 할렌바드 오스트, Photo by Nicolas Wefers Courtesy of Documenta
이미지
카셀 도쿠멘타 Documenta 15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뉴스는 또 한 번 최고가를 경신한 경매 소식이나 세계 몇위 부자의 아트 컬렉팅 뉴스지만 여전히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신랄한 시각예술 언어로 풀어내는 묵직한 미술 행사도 있다. 바로 독일 중부 도시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가 그것이다. 카셀 도큐멘타의 진보성은 행사의 유래에서 비롯된다. 1930년대 나치가 집권하면서 각종 문화 말살 행위가 일어났는데 당시 동시대 미술은 퇴폐 미술로 취급받았고 도시 중심부인 프리드리히 광장에서는 수많은 책이 불타 사라졌다. 이에 1955년 카셀대학교의 교수이자 미술가, 큐레이터였던 아놀드 보데는 예술로 파괴된 도시를 치유하고 부흥시키기 위해, 또 나치의 미학적 범죄에 대한 속죄와 예술적 자유를 기념하기 위해 카셀 도쿠멘타를 창설했다.
이미지
대형 벽화 파사드로 시선을 사로잡는 메인이벤트 홀 중 하나인 루루 하우스,
Photo by Nicolas Wefers Courtesy of Documenta
이미지
지난 2017년 열린 카셀 도쿠멘타에서는 프리드리히 광장에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마르타 미누힌의 <책들의 파르테논>이 설치돼 카셀 도쿠멘타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보여줬다. 작가는 그리스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만들었던 파르테논을 본떠 철골 구조로 신전을 만든 후 금서로 지정되었던 3만 권의 책을 기증받아 외벽에 붙였다. 금서로 지정된 책들이 불타 없어진 광장에서 “그 누구도 책을 금지할 권리는 없다.”고 역설하며 책들의 신전을 쌓아 올린 것. 카셀 도쿠멘타에서는 이렇게 카셀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작품들이 소개된다. 독일 작가 요제프 보이스가 100일 동안 민주주의와 예술에 대해 강연하고 관객들과 토론했던 1972년의 도쿠멘타5나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가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해본 적 없는 중국 전역의 1001명을 카셀로 초대해 작품을 관람하게 한 2007년 도쿠멘타12 등 미술을 통해 혁신적인 지성의 제안이 이루어지는 것. 이번 카셀 도쿠멘타에서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설립된 예술 공동체 루앙루파가 총감독을 맡아 어떤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스펙터클을 보여줄지 다시 한번 기대를 모으고 있다.

6월 18일부터 9월 25일까지.
카셀 도큐멘타에서는 페인팅, 설치, 퍼포먼스, 이벤트 등 다양한 매체의 예술이 펼쳐진다.
이머징 아티스트를 위한 프로젝트 아트 워크 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