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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GRAND TOUR
아트 그랜드 투어의 메인이벤트,
베니스 비엔날레의 추천 전시 5
팬데믹으로 연기되었던 미술계 주요 행사들이 다발적으로 개막한 2022 아트 그랜드 투어. 가장 중심이 된 행사,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화제의 전시를 소개한다.
글/ 안동선 (프리랜스 에디터)
비엔날레 시즌이 되면 베니스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미술관이 된다. 옛 무기고이자 국영 조선소였던 아르세날레에서 열리는 본전시와 자르디니 공원에서 열리는 국가관 전시 외에도 도시 곳곳에서 수십 개의 비엔날레 병행 전시와 위성 전시가 열리는 덕분이다. 현대 미술 계에서 내노라 하는 작가들이 베니스의 영광이 찬란하게 기록된 팔라초(palazzo: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시대에 세워진 관청 혹은 귀족의 저택)에서 여는 개인전들은 섬세하게 동선을 짜서 필수적으로 관람해야 할 볼거리다.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는 곳도 많아서 역사적인 명소도 방문하고 그곳을 재해석한 장소 특정적 작품을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를 누리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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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지인들을 모델로 폴리우레탄을 캐스팅해 만든 <Cloud> 시리즈가 천장을 향해 날아오르는 느낌을 준다
우고 론디노네 at Scuola Grande di
San Giovanni Evangelista
13세기에 지어진 스쿠올라 그란데 디 산 조반니 에반젤리스타는 학교, 교회, 묘지로 구성된 복합적인 건축물이다.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양식이 혼합된 이곳에는 ‘True Cross’라고 불리는 진귀한 유물, 베네치아 화가들의 그림, 파이프 오르간 등이 몇 세기에 걸쳐 소중하게 보관돼 있다. 스위스 미술가 우고 론디노네는 삶과 죽음 그리고 예술이 한데 모여 있는 공간에 명상 자세로 캐스팅된 ‘구름 인간’과 녹아내리는 형형색색의 촛불 그리고 황금빛을 발하는 거대한 원 조각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궤를 같이하는 인간의 신비롭고 애틋한 삶을 형상화했다. 이번 전시의 제목 <<Burn Shine Fly>>는 세상을 떠난 작가의 반려자 존 조르노의 시구절 ‘You got to burn to shine’에서 따왔다고 한다.
산 조반니 에반젤리스타 중정에 설치한 거대한 황금빛 원 조각 <Sun II>
무덤이 있던 자리에 설치한 브론즈 캐스트 촛불 조각 <Still. Life.> 시리즈
<<Burn Shine Fly>>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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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부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화면을 가로지르는 그림과 다이내믹한 추상화가 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안젤름 키퍼 at Palazzo Ducale
이번 비엔날레 시즌에 열린 거장들의 개인전 중에서 최고의 화제작인 안젤름 키퍼의 전시는 679년부터 1797년까지 1100년 동안 베니스를 다스린 베니스 총독 120여 명의 공식적인 주거지였던 두칼레 궁전에서 열리고 있다. 36개의 기둥으로 이뤄진 회랑, 핑크빛 대리석, 베네치아 고딕이라고 불리는 특유의 건축 양식이 자아내는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이 궁전의 감옥에는 카사노바가 갇혔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글은 불타면 마침내 작은 빛을 발할 것이다’라는 이탈리아 철학자의 말을 인용한 제목 <<Questi scritti, quando verranno bruciati, daranno finalmente un po’ di luce>> 의 전시에서 작가는 지난 50여 년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일관되게 말해왔던 존재와 시간의 공생에 대해 설파한다. 가로세로 10미터 가까이 되는 거대한 화폭에 모래, 밀짚, 나무, 재, 아연 등 다양한 재료로 그려낸 장구한 내러티브는 아무리 화려해도 종국에는 허무할 수밖에 없는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끝내주는 시각적 롤러코스터로 표현했다.
<<Questi scritti, quando verranno bruciati, daranno finalmente un po’ di luce>> 전시 전경
인트로에 설치한 작품에서 키퍼 작품의 특징을 모두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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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초 만프린에 설치한 <White Sand, Red Millet, Many Flowers>
아니시 카푸어
at Gallerie dell’accademia
& palazzo manfrin
인도 태생 영국 작가 아니시 카푸어는 이번 베니스에서 열린 개인전 중 가장 충격적인 이미지를선보였다.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한 베네치아 화파 거장들의 작품 8백 점을 14~18세기까지 시기별로 전시하고 있는 아카데미아 미술관과 카푸어가 구입해 앞으로 다양한 현대 미술 프로젝트의 거점으로 삼을 팔라초 만프린에 펼쳐낸 강렬한 작품 세계는 블랙과 레드로 수렴된다. 99.9%의 빛을 흡수해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벤타 블랙과 핏덩이를 연상시키는 붉은 안료로 칠갑해 놓은 거대한 조각과 캔버스는 미학적 웅장함 속에 충격적인 메스꺼움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 Anish Kapoor Photo © David Levene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설치한 <Shooting into the Corner>
팔라초 만프린에 설치한 <Mount Moriah at the Gate of the Ghe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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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건축 거장 카를로 스카르파가 리모델링한 1층 로비 공간에 설치한 이사무 노구치의 조명
단보, 이사무 노구치, 박서보
at Fondazione Querini Stampalia
베네치아가 도시로서 모습을 갖추던 시기 크게 기여한 스탬팔리아 가문의 저택이었던 스탬팔리아 재단은 가문의 다채로운 아트 컬렉션을 선보이는 갤러리, 4만 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 등이 모여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비엔날레 시즌을 맞아 이곳 현대미술 프로그램의 큐레이터는 베트남 출신으로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현대미술가 단보를 초대해 색다른 전시를 구성했다. 단보는 일본계 미국인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 단색화의 아이코닉한 한국 화가 박서보와 함께 자기 작품을 이 유서 깊은 건물의 컬렉션과 함께 배치하면서 시대와 주제를 가로지르는 무형의 대화를 나눈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들꽃과 작가의 아버지가 연필로 적은 꽃의 라틴어 학명으로 이뤄진 단보의 사진 설치 작품과 노구치의 종이로 만든 아카리 램프, 그리고 박서보의 단색화는 이탈리아 건축 거장 카를로 스카르파가 리모델링한 건축과 조화를 이루며 인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사진/ 안동선
이 전시에서 큐레이팅을 맡은 단보는 사진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베네치아의 역사를 그린 그림이 벽면을 가득 채운 방 복도에 노구치의 종이 램프가 빛을 발한다
박서보, 이사무 노구치, 단보의 작품이 조화를 이룬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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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원과 3차원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두 조각가의 다양한 매체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루시오 폰타나 & 안토니 곰리
at Negozio Olivetti
산 마르코 광장의 올리베티 쇼룸은 ‘디테일의 신’이라 불렸던 카를로 스카르파가 설계한 건축 유산으로 무척 유명하다. 이 아름다운 모던 건축물에서 전설적인 이탈리아 조각가 루시오 폰타나와 현재 가장 유명한 조각가 중 한 명인 영국 작가 안토니 곰리가 처음으로 작품으로서 교류를 갖는다. 그들의 작품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빛, 공간, 그리고 부재를 말하고자 한 이번 전시에는 두 조각가의 조각은 물론 목업과 드로잉 등 보다 내밀한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들을 선별하여 소개해 두 거장의 작품 세계를 한층 친밀하게 접하게 한다.

사진/ 안동선
건축물과 작품을 통해 건축가 카를로 스카르파와 두 작가의 대화가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