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멋 부리기 좋아하던 20대 시절, 비가 억수로 퍼붓는 장마철이면 난 유독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 화이트 룩으로 입고 싶었다. 다들 레인부츠나 워터프루프 소재의 옷들로 비를 피할 때 뭐든 반대로 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장마철엔 항상 눅눅한 행주가 된 느낌이었는데, 화이트 룩은 잠시나마 바삭하게 말린 타월로 신분상승(?)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난 빳빳하게 다린 화이트 셔츠에 화이트 진을 입고 백옥처럼 하얀 샌들을 신은 채 기세 좋게 외출을 감행하곤 했다. 물론 쾌적한 기분도 잠시, 지나가는 트럭이나 버스에서 튄 물벼락을 맞고 후회를 하며 집으로 돌아온 것이 부지기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