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랍에서 꺼낸 셔츠
겨울이 코트라면 봄은 셔츠, 가을이 스웨터였다면 봄은 셔츠.
이것은 더하고 뺄 것도 없는 쇼핑가이드. 그리고 다정한 사람들이 나누는 계절의 인사법.
글, 사진/ 장우철 (작가)
‘봄은 셔츠’라고 말하려니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나의, 친구의, 선배의, 아빠의, 누구들의
아는 얼굴, 웃는 얼굴입니다
봄이었겠어요
잔디에 앉거나 강변을 걷거나
문을 열고 들어오거나
돌아보니 서있었거나
어느새 떠오르는 얼굴들입니다
봄의 셔츠는 말하자면
그 얼굴들로부터 온 것 같습니다
서랍 속에, 화첩 속에 조용히 개어져 있다가
어떤 날 문득 꺼내보는
기억 같은 옷으로서 말입니다
톡톡한 옥스포드 면으로 만든 흰 셔츠
매일같이 입었던 푸르데데한 셔츠
작고 야무진 단추가 튼튼하게 달린 셔츠
색이 연해지고 뒷목이 조금 헤진 셔츠
이제 보니 앞자락에 옅은 풀물이 든 셔츠
한동안 잊고 지낸 그 셔츠
봄은 새롭다고들 합니다
무작정 새 것이라서가 아니라
다시 한 번 새로울 수 있어서겠습니다
셔츠를 입고 단추를 채웁니다
카라 끝 한 점 단추가 마침표 같기도
어쩌면 쉼표 같기도 합니다
기억하는 그 셔츠를 입은 날
오늘 왠지 어려 보인다는 얘기를 들어도 좋겠습니다
p.s.
버튼다운셔츠의 처음을 알아보자면, 영국 폴로 경기가 어쩌구, 바람에 날리는 칼라를 고정시키기 위해 단추를 달고 블라블라블라 하는 심심한 얘기가 나올 겁니다. 오늘은 그런 정보보다 “풀 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언젠가 알았는데 어느새 잊혀진 노래를 읊조려도 보면서 힌트를 찾는 건 어떨까요. 누군가의 고유한 멋이란 아이템이 아니라 어울리는 감성과 분위기가 만들어줄 테니까요.